WRC 최초 한국인 드라이버를 위해 '5000:1 뚫은 임채원'

박혜연 2017. 3. 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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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모터스포츠팀 랠리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 첫 주인공
독일 랠리에 참가한 임채원 드라이버의 현대 i20 R5 랠리카. 현대모터스포츠 제공

현대 모터스포츠팀이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 참가한 지 올해로 4년째다. 첫 해 열린 9번째 독일 경기에서 우승컵을 가져온 그들은 지난해 종합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현대 모터스포츠팀은 2017 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로 언급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으며 WRC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현대 모터스포츠팀 드라이버가 모두 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브랜드인 현대 i20 랠리카로 우승해도 시상대에는 태극기가 아닌 드라이버의 국기가 걸린다. 랠리카 외부에 붙는 국기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이버의 정보가 붙기 때문에 결국 한국인 드라이버가 없으면 WRC 중계에서 태극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일까, 현대 모터스포츠는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을 2015년 10월 SBS와 함께 드라이버 오디션 프로그램 ‘랠리스트’를 통해 진행했다.

결과는 5000:1의 경쟁률을 뚫고 우승한 임채원 선수가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이후 임 선수는 2016년 독일로 건너가 랠리 드라이버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약속된 후원 기간은 2년. 이제 절반인 1년이 지났다. 혹독한 훈련 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현대 i20 R5 랠리카’로 본격적인 도전에 나선다.

2017 시즌, 현대 i20 R5 랠리카에 태극기를 달고, 유럽 전역을 누비며 RC2 등급 랠리 경기에 참전하고 있는 임채원 드라이버를 서면 인터뷰했다.

현대모터스포츠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의 첫 주인공, 임채원 선수와 코드라이버 마틴 빌데거.현대모터스포츠 제공

#랠리스트에서 우승자로 선정되고, 독일로 건너가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 전 한국에서는 어떤 준비를 했나?

랠리스트 프로그램이 끝나고 곧바로 독일로 왔다. 2016 WRC가 개막했기 때문이다. 도착 후 바로 WRC 개막전인 몬테카를로 랠리에 팀원으로 참여했다.

#현대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 1년 차였던 2016년은 어떤 교육을 받았나?

랠리의 특징이자 어려운 점은 연습 없이 페이스노트(pace note)에 의지해 즉각적으로 빠르게 반응하며 주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고 효율적인 페이스노트 작성이 중요하다. 랠리카 안에서 이를 빠르게 이해하고 맞춰 즉각적으로 주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훈련을 위해 대부분 시간을 코드라이버와 함께 인근 도로 혹은 WRC 이벤트 페이스노트 작성 시간에만 참여하며 자신만의 페이스노트 시스템을 하나씩 만드는 훈련을 했다. 페이스 노트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미 지난해 R2 랠리카로 랠리 데뷔한 것으로 알고 있다.

랠리에는 다양한 클래스가 있다. 현재 현대 월드랠리팀이 참가하는 RC1 클래스(WRC급 차량), 아래로 차량의 개조 허용범위와 퍼포먼스에 따라 순차적으로 RC2 클래스(R5급 차량), RC3 클래스(R3급 차량), RC4 클래스(R2급 차량), RC5 클래스(R1급 차량)로 나뉜다. 교육 첫 해 2016년에는 현대의 랠리카가 아닌 ‘오펠’의 아담 R2 랠리카로 출전했다. 2016년 6월 첫 랠리 출전 이후 지난해 총 7번의 랠리에 참가했다.

#지난 6년간 서킷에서 기량을 쌓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F3에서 우승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유명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랠리다. 완전히 다른 방식의 경기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은가?

F3 드라이버로 쌓인 습성을 버리기 위한 노력을 했다. 랠리는 시시각각 환경이 변하는 안전지대가 없는 매우 위험한 곳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모든 코너를 서킷처럼 한계로 타려고 하다가는 페이스노트를 놓치거나 변수에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이로 인해 서킷에서 타이어에 마진 없이 한계까지 주행하려는 습관을 버리고 페이스노트에 집중하여 주행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했다. 또한, 수없이 다양한 랠리 환경 각각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고 경험을 쌓으려 노력하고 있다.

#R2 랠리카로 출전한 지역 랠리에서 우승도 했다. 랠리에 빠르게 적응한 비결이 있나?

2016년 8월 8일 벨기에 지역 랠리인 버클 드 쉐보타인 랠리에서 클래스 1위, 전체 2위를 했다. 사실 이 랠리에서 우승할 수 있던 것은 노면 상태가 서킷과 같이 거의 일정했기 때문이다. 시야가 잘 확보되었으며, 스테이지가 복잡하지 않아 페이스노트 작성부터 듣고 주행하는 것까지 무리가 없었다. 그간 서킷에서 쌓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포뮬러 클래스를 거치며 랠리에 도움을 받은 것도 있다. 왼발 브레이크의 경우 이미 포뮬러 클래스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왔기 때문에 정확히 사용할 수 있었다. 스테이지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느껴지는 속도도 거부감 없이 적응했다. 차량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도 포뮬러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매 경기 달라지는 환경과 다양한 변수에 맞춰 페이스노트 시스템을 만들고 작성한 페이스노트에 의지해 주행하는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눈비가 오거나 밤에 경기가 진행되면 더욱 힘들어진다. 앞으로 랠리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장단점을 냉정히 판단하여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일 랠리에 참가한 임채원 드라이버의 현대 i20 R5 랠리카. 현대모터스포츠 제공

#포뮬러와 랠리, 각각의 매력과 차이를 꼽는다면?

포뮬러는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다. 특히 클래스가 높아질수록 한계점이 높아지고 날카로워 진다. 아주 작은 차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차량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예민하게 느끼고 섬세한 주행 요구되는 경기다.

반면 랠리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서킷과 다르게 매우 다양한 환경으로 구성된 스테이지 구간에서 경기가 진행된다. 포장도로도 마찰력이 제각각이며, 울퉁불퉁한 길, 흙길, 눈길, 빙판길, 길의 폭부터 주변 환경까지 다양한 자연에서 차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경기한다. 한계에 가깝게 주행해야 하는 건 서킷과 같다. 그래서 드라이버는 더욱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하며, 차의 움직임을 더욱 다양한 환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랠리는 포뮬러 보다 역동적인 경기다.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 2년 차인 올해부터는 현대 i20 R5 랠리카로 경기에 참가한다.

2017년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총 6번의 경기가 펼쳐지는 ‘투어 유로피안 랠리(Tour European Rally)’를 비롯해 ‘독일 랠리(Rally Deutschland)’ 등 총 14번의 랠리에 출전할 예정이다. 최선을 다해 경험을 쌓아나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

독일 랠리에 참가한 임채원 드라이버의 현대 i20 R5 랠리카. 현대모터스포츠 제공

#지난 6일, 현대 i20 R5로 독일 아데아체 랠리(ADAC Rallye Masters)에 도전해 8위를 기록했다. R5 랠리카와 함께한 첫 경기는 어땠는지?

첫날 지옥 같은 야간 스테이지에서 20위권 가량의 성적으로 마쳐야 했으나, 다음날부터 점점 적응해 안정적으로 완주했다. 스스로 여러가지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스테이지 10에서는 5번째로 빠른 기록도 냈다.

속도는 자신 있지만, 페이스노트와 스테이지에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는 당분간 현명하게 경험을 쌓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이자 팀의 주문이다. 이런 면에서 완주한 것과 스테이지를 지날 때마다 점점 속도가 올라가고 차에 적응해 간 부분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제 막 랠리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보강할 점은 너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랠리 경기에 존재하는 다양한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서킷 처럼 연습이 없기 때문에 어떤 부분들이 위험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시간을 잃지 않으면서 빠르고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경험을 차곡차곡 잘 쌓아야 장거리 경기인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드라이버 마틴 빌데거와 임채원 드라이버. 현대모터스포츠 제공

#급박한 상황에서 한국어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텐데, 코드라이버와 영어로 소통하는 게 불편하지는 않은가? 한국인 코드라이버 기용은 불가능한가?

코드라이버와 미리 정해놓은 페이스노트 언어로 페이스노트를 작성해 이를 들으며 주행한다. 이미 서로가 정해 놓은 단어로만 코스의 형태와 정보들을 표현하기 때문에 언어 문제는 사실 크지 않다. 물론 한국인 코드라이버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다만 코드라이버도 드라이버와 같이 레이싱 주행 혹은 차량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있어야 한다. 언젠가 한국인 코드라이버와 출전하면 더욱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 자동차 브랜드인 현대차가 WRC에 참가하고, 그 안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게 뿌듯하고 자부심 생기게 하는 일화가 있을까?

모터스포츠는 오랜 시간 동안 유럽을 배경으로 유럽 혹은 일본 브랜드에 의해 주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아직 드라이버로 직접 함께 참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자동차 랠리 팀이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경기인 WRC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얼마 전 현대 모터스포츠에서 개발한 i20 R5 랠리카에 태극기를 달고 독일 경기에 출전했을 때는 형용할 수 없는 큰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교육 후원 기간은 2년으로 알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어떻게 되나?

아직은 이에 관해서 이야기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이제 막 시즌이 시작됐다. 올 한해 주어진 데서 최선을 다하여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현실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현대 모터스포츠팀이 아니더라도 계속 랠리에 남을 건가, 아니면 다시 포뮬러로 돌아가고 싶은가?

목표는 여전히 모터스포츠에서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좋은 선수가 되어 WRC에 한국인으로서 진출하는 목표 하나만 생각하고 있다. 아직 경력은 짧지만, 랠리는 드라이버에게 정말 매력적이고 도전적인 분야이다. 최선을 다해 랠리 분야에서 계속 커리어를 잘 쌓아 나가고 싶다.

랠리 우승도 목표가 될 수 있겠지만,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랠리에 자신 있는 준비된 선수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 중에 성적도 자연스럽게 나오리라 생각한다. 이후의 목표는 한국인으로서 랠리의 최상위 프로 무대인 WRC 무대에 출전하는 것이다.

#혹시 장기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

장기적인 꿈이라면, 모터스포츠 선수로서 겪은 모든 경험을 토대로 어리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세계에서 당당하게 겨룰 수 있도록 육성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임채원 선수를 응원하고 있는 팬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은?

모터스포츠에서 도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좋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항상 감사 드린다. 응원에 힘입어 꼭 좋은 소식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끝까지 지켜봐 주길 바란다.

임채원 드라이버는 팬들을 위해 유튜브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gochewon(https://www.facebook.com/gochewon))을 통해 참가 경기 영상 및 결과 등 각종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WRC 진출하는 그날까지 응원을 부탁 드린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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