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인사이트]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인형..인간을 대신해 희생하다

입력 2017. 7. 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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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충돌 시험용 인체 모형..사람의 뼈·근육·피부까지 비슷
억대는 예사..7억 넘는 더미도
센서 기술 발달에 힘입어 진화..시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 체중 124kg 고도 비만형도 있어

더미의 세계

사고로 찌그러진 차를 보면 단순히 덜 찌그러진 차가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동차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탑승자가 있는 객실 부분이 멀쩡해야 안전한 차라고 여긴다.

하지만 자동차의 안전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고가 났을 때 차체는 거의 부서지지 않고 멀쩡하지만 탑승자는 크게 부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체가 충돌 충격을 거의 흡수하지 못하고 탑승자에게 그대로 전달했거나 안전벨트 같은 안전 장비가 신체를 제대로 붙잡지 못해 내장재와 충돌하는 2차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충돌 결과만으로는 사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이러한 사고 원인을 파악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가 자동차 충돌 시험용 더미(Dummy)다. 더미는 '모조품' '가짜'라는 나쁜 뜻과 달리 자동차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충돌 시험용 더미는 사람과 겉모습만 비슷한 마네킹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부 TV 프로그램에서 마네킹을 차량에 태우고 실험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지만 이것은 단순한 재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체중을 사람과 비슷하게 맞춘 모래 인형도 아니고 사람과 비슷한 관절을 넣은 커다란 바비 인형도 아니다.

충돌 시험용 더미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충돌 시험용 인체 모형(ATD·Anthropomorphic Test Device)이다. 사람과 외모만 닮은 게 아니라 차량 충돌처럼 외부에서 힘을 받았을 때도 사람 몸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크기, 모양, 체중뿐 아니라 유연성, 충격 흡수 능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체와 매우 흡사하다.

더미를 만들 때는 근골격 연구 자료와 같은 인체 연구 결과물을 적용한다. 더미의 핵심 노하우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와 일본의 인체 실험 자료에서 출발했다는 소문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미는 알루미늄과 철로 만든 내부 골격, 합성수지로 제작한 인조 조직, 인조 피부로 이뤄졌다. 인조 조직은 인체의 살 부분과 유사한 충격 흡수력을 지녔다.

인조 피부는 사람 피부와 비슷한 마찰계수를 가졌다. 인체와 내부 장기가 충돌 사고에서 받는 충격, 가속도, 관절 변형량 등을 정밀하게 재연하도록 만들어진다.

인체 장기가 받는 충격을 최대한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두개골과 갈비뼈도 갖췄다. 당연히 가격이 비싸다. 1억원 이상이다.

그러나 더미만으로는 충돌 시 사람이 입는 피해를 정확히 분석할 수 없다. 충돌 외상과 충격 흔적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를 어떻게 부딪쳐서 상처를 입을 위험이 있다는 정성적 결과만 알 수 있다. 충돌 사고 때 충격이 얼마나 강하고 관절에는 얼마의 힘이 가해져 몇 도나 꺾이는지 등 정량적 결과를 얻으려면 인체 더미에 센서를 추가해야 한다. 더미 각 부분에 센서를 추가하고 외부 데이터 수집장치 통신 기능 등을 추가한 본격적 더미의 가격은 3억원이 넘는다.

짧은 시간에 아주 복잡한 움직임을 보이는 측면 충돌 시험용 더미(SID·Side Impact Dummy)는 7억원 이상이다. SID는 측면 충돌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늑골과 척추는 물론 내부 장기 움직임과 흉곽 변형까지도 측정할 수 있는 매우 정밀한 더미다.

하지만 모든 충돌 시험에 고가의 더미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특정 부위 충격만을 측정하는 시험에는 인체 일부분만을 재현한 부분 더미를 사용한다. 헤드 레스트의 경추 보호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후방 추돌 시험에는 경추를 중심으로 상체에만 정밀 신체 모형과 센서를 적용한 경추 전용 더미, 보행자 충돌 시험에는 범퍼의 보행자 보호 기능을 시험하기 위한 다리 더미, 보닛의 두부 충격 시험에는 머리 더미 등을 이용한다.

이처럼 더미 종류는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미에도 남녀노소와 가족이 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가족 더미는 1976년 제너럴모터스가 고안한 5인 가족형 하이브리드 Ⅲ 패밀리다. 미국 남성 평균에 해당하는 신장 175㎝ 체중 77㎏의 아빠 더미, 미국 하위 5%에 해당하는 신장 152㎝ 체중 50㎏의 엄마 더미, 3·6·10세 아이 더미로 구성됐다. 최근에는 미국 남성 상위 5%에 해당하는 신장 188㎝ 체중 100㎏의 삼촌 더미가 추가됐다. 더미는 센서 기술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Ⅲ의 아빠 더미를 대체하는 THOR(Test device for Human Occupant Restraint)가 대표적이다. 하이브리드 Ⅲ 더미에 비해 THOR 더미는 훨씬 인체와 비슷한 척추·골반, 더 정밀하고 다양한 센서를 적용했다. 얼굴에 부착하는 센서도 많아졌다.

법규 변화도 더미의 진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법규가 요구하는 기준, 항목, 측정 방식이 바뀌면 더미도 재빠르게 이에 적응한다. 미국과 유럽 등 국가마다 규정이 달라지면 더미도 변한다. 더미를 이용한 실험 결과가 없으면 자동차 제작사는 안전 법규를 무난히 통과하기 어렵다.

아울러 사람 체형이 변하면 더미도 변한다. 고도 비만형 더미가 대표적이다. 고도 비만인 사람은 사고가 났을 때 더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자동차보험료와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자동차 제작사는 표준 더미를 이용한 안전 법규 통과만큼이나 고도 비만자와 같은 특별한 탑승자의 안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고도 비만형 더미가 개발된 이유다. 더미 제작사인 휴머네틱스의 고도 비만형 더미는 체중이 124㎏에 달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최초의 더미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시체다. 1949년에 최초의 충돌 시험용 더미가 나오기 전에는 동물을 대신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람과 가장 가까운 실험체는 역시 사람이었다.

시체가 사람을 살린 셈이다. 더미의 출현으로 자동차가 더 안전해지면서 목숨을 건진 사람도 급증했다. 생명은 없지만 사람을 살려주는 더미, 그리고 더미 이전에 자신의 몸을 내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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