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할 시간도 없던 배리 엥글 사장, 한국GM 살려낸 '막후 실세'

송화정 입력 2018. 4. 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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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수염 깎지 않은 모습 눈길..법정관리 데드라인 연기에도 결정적 역할
지난 23일 한국GM 임단협 잠정 합의 발표 후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왼쪽부터) ,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승 다성 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모든 참여자들의 희생을 통해 구조조정이 가능하게 됐으며 회사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배리 엥글 제너럴 모터스(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23일 자신들이 설정한 법정관리 데드라인(오후 5시)을 한 시간 남긴 상황에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 합의를 이룬 데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며칠째 수염을 깎지 않아 덥수룩한 그의 얼굴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주변 인사들에 "한국GM 사태가 해결될 때 까지 면도를 하지 않겠다"는 농담을 던지며 협상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했다. 한국GM 관계자들은 협상 타결후 한국GM이 법정관리 문턱에서 되돌아 올 수 있었던 데는 엥글 사장의 역할이 컸다고 입을 모은다.

엥글 사장은 교섭장에 직접 들어가진 않았지만 막후에서 필요한 의사 결정을 도맡았다. 또한 20일이었던 법정관리 데드라인을 23일로 연기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일 노사가 잠정 합의에 실패하며 교섭이 결렬된 후 열린 이사회에서는 법정관리 신청안 의결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엥글 사장의 요청으로 댄 암만 GM 총괄사장과 엥글 사장 간 콘퍼런스 콜이 이뤄졌다. 대화는 1시간 30분 넘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협상을 더 진행키로 하고 데드라인이 23일 오후로 연장됐다.

주말동안 교섭이 진행됐지만 진전없는 대치가 이어졌다. 이에 22일 저녁 엥글 사장은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임한택 노조지부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한국GM대책특별위원회 위원),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이 참석하는 '5자 회동'을 열고 밤샘 논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노사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던 군산공장 근로자 고용 문제 등에서 접점을 찾았고 잠정 합의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GM 관계자는 "엥글 사장이 교섭장에 직접 들어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필요시 본사와 협의해 빠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GM 남미부문을 맡아왔던 엥글 사장은 올해 초부터 남미 부문을 통합한 GM의 해외 사업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북미와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사업을 총괄하게 된 후 수시로 한국을 오가며 한국GM 회생과 관련한 주요 사안들을 직접 챙겨왔다. 지난해 연말 첫 방문 이후 여섯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엥글 사장이 한국GM 사태 해결에 직접 나서면서 한국GM에 브라질식 회생 방안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됐다. GM은 2014년 브라질법인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다가 노·사·정이 고통 분담에 합의하자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회생으로 선회했다. 엥글 사장은 이 브라질식 모델을 직접 추진한 인물이다. 미국 브리검영대학에서 스페인어를 부전공하고 아르헨티나에서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포드자동차 남미부문 사장으로 재직하는 등 남미 전문가로 통하는 엥글 사장은 2015년 GM에 합류해 남미 사업을 이끌면서 브라질 모델을 추진했다. 당시에도 그는 정부와 노조 관계자는 만나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의 행보는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매번 방한 때마다 국회, 산업은행,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을 찾아 한국GM 회생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엥글 사장은 지난 2월 국회를 찾아 "한국에서 사업을 지속하고자 하며 경영상황을 개선해 건전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지속사업을 위해) 모든 이해관계자로 부터 협조와 지원을 바란다. GM은 스스로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노조와도 만나 고통분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엥글 사장은 "정부가 4월20일까지 자구안을 내놓을 것을 요청했으며 3월 말까지 임단협이 잠정 합의라도 도출하지 못할 경우 기한 내 자구안 마련이 어렵다"면서 "자구안을 내지 못하면 정부나 산업은행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현재 자금 상황을 고려할 경우 부도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빠른 합의를 촉구했다.

법정관리 위기를 넘겼지만 한국GM의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갈길이 멀다. 엥글 사장이 잠정 합의를 이끌어냈음에도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 10일 입국해 열흘 넘게 한국에 체류 중인 엥글 사장은 아직 출국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자금지원을 둘러싼 정부, 산은과의 협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아직 엥글 사장의 출국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면서 "이제 산은 등과 만나 구체적인 지원 방식 등에 대한 논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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