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 닛산 로그 후속물량 배정 '빨간 불'..카를로스 곤 낙마 후폭풍

진상훈 기자 2019. 1. 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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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이 올해 9월 위탁생산 계약이 끝나는 닛산 로그의 후속 물량을 배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든든한 ‘우군(友軍)’이었던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지난해 구속돼 경영에서 사실상 축출된 데다, 최근 한-일 관계마저 악화돼 닛산이 더 이상 한국에 로그의 생산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니혼게이자이

닛산의 북미 수출용 중형 SUV인 로그는 르노삼성 부산공장 생산 물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해 르노삼성은 총 22만7577대를 판매했는데, 이 가운데 로그의 수출물량은 10만7245대에 달했다.

르노삼성은 최근 내수와 수출이 모두 감소하며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해 전체 판매량은 전년대비 17.8% 줄었다. 만약 닛산 로그의 후속물량을 배정받지 못할 경우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지난해 군산공장을 전격 폐쇄하고 본사의 한국 철수 가능성까지 불거졌던 ‘한국GM 사태’와 비슷한 흐름이 르노삼성에서도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카를로스 곤, 르노에서도 축출 가능성…로그 후속 물량 배정 ‘안갯속’

파이낸셜타임스(FT)와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지난해 일본에서 구속기소된 카를로스 곤 회장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이어 르노그룹의 회장직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르노그룹에 오는 20일 곤 회장의 후임 인선을 위한 이사회를 열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는 르노 지분의 1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생산되는 닛산 로그/르노삼성 제공

곤 회장은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과거 유가증권보고서에 5년치 연봉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로 인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구성하는 닛산과 미쓰비시의 회장직에서 해임됐지만, 르노는 혐의가 완벽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며 곤 회장의 회장직을 유지해줬다. 그러나 곤 회장에 대한 구속수사가 길어져 경영 공백이 장기화됨에 따라 결국 그를 대신할 새 회장을 물색하기로 한 것이다.

곤 회장은 르노삼성의 오랜 우군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지난 2013년 닛산 로그의 위탁생산 공장을 결정할 당시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그룹 내 생산성 순위는 25위에 불과했다. 닛산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르노삼성이 로그의 생산기지로 선택을 받은 데는 곤 회장의 ‘입김’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곤 회장의 낙마는 사실상 르노삼성과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연결하는 끈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며 "그가 르노의 회장직도 잃을 경우 닛산은 물론 르노의 생산물량을 받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 악화된 韓-日 관계도 닛산의 후속물량 배정에 악재

자동차 업계와 금융시장에서는 최근 크게 악화된 한-일 관계도 닛산의 로그 후속물량 배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는 우리 정부의 위안부 화재치유재단 해산,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악화됐다. 특히 최근에는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레이더 사건으로 감정의 골이 크게 벌어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닛산이 자국의 비난여론까지 감수하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한국에 위탁생산 물량을 배정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철강, 알루미늄 업계 근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국산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선일보DB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3년 이후 닛산은 중국 등에 대규모 공장을 증설해 생산능력을 확장했다"며 "인건비 수준이 높고 매년 임금협상 분쟁 위험도 있는 한국을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닛산 대신 르노로 눈을 돌린다고 해도 자국인 프랑스의 물량을 빼 와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르노 차량을 배정받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 르노삼성 사활 여부 결정할 ‘운명의 2월 17일’

르노삼성이 글로벌 자동차 생산기지로 제 기능을 유지할 지 여부는 다음달 17일에 판가름 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날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차가 자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모든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실적을 좌우할 최대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외국산 자동차 수입에 대해 줄곧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만약 보고서가 고율 관세의 필요성을 입증하게 될 경우 자동차 업체들의 미국 수출길은 사실상 막히게 된다. 북미 시장에 수출하는 로그를 생산하는 르노삼성 부산공장 역시 위탁생산기지의 역할이 끝날 수 밖에 없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르노삼성은 지난해 출시한 전기차 트위지, 소형 해치백 클리오를 출시했지만, 국내에서 경쟁에 밀려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로그를 잇는 후속 위탁생산 물량을 받지 못할 경우 ‘제2의 한국GM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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