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전선과 중국 자동차,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

조회수 2017. 8. 31. 14: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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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게임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를 만날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저녁 식사 자리가 밤까지 이어지고 가볍게 마시던 맥주가 소주로 바뀌어 가고 있을 즈음, 그 친구는 잦은 야근과 특근이 이어지고 봉급도 적은데다가 해고는 너무나도 손쉬운 국내 게임산업계의 문제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했다. 기자도 한 때 게임산업에 몸을 담았었기 때문에 ‘과거하고 변한 게 거의 없네’라고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즘의 국내 게임산업이 너무 어렵다는 푸념과 함께 중국 게임들이 싫다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친구는 갑자기 기자가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을 집은 후 설치되어 있던 게임을 확인하고서는 최근 기자가 즐기고 있는 ‘소녀전선’이라는 게임을 지우려고 했다. 결국 힘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친구는 갑자기 한국인이 중국 게임을 즐기면 안 된다고, 이대로 가면 국산 게임은 망할 수 밖에 없다고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친구를 끌고서 빠르게 술집에서 나왔고, 그 날의 술자리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그 친구의 취중발언이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평소에 ‘국산 게임의 문제점’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생각이 깊다고 봐 왔기 때문이다. 무료로 게임을 설치할 수는 있지만 퀘스트 클리어를 위해 유료 아이템을 구매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는 시스템, 무료 유저와 유료 유저간의 게임 플레이 난이도가 큰 차이를 보이는 점 등 국산 게임들은 그 동안 문제를 많이 안고 있으면서도 ‘수익 확대’라는 이름 아래 이 문제들을 묵인해 왔다.

 

소녀전선이 성공한 이유는 다양한 캐릭터, 쉬운 조작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동안 국산 게임들이 묵인해 왔던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게임업계는 소녀전선의 사례를 보고 문제를 해결해나갈 의지를 보이기 보다는 중국 게임의 단점을 지적해나가기 바빴고 국내 게임 퍼블리셔들은 견제 자세를 취하고 소녀전선의 순위를 떨어뜨리려고 했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소녀전선은 지금도 앱 마켓 매출 3~6위를 계속 유지 중이다.

 

자동차도 다르지 않다

 

소녀전선은 게임 이야기이니 자동차와는 상관 없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불과 몇 년 전, 중국 시장에 저가형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고 정말 단순한 형태의 게임들이 중국 시장에서 출시되고 있을 때 중국 내에서 소녀전선과 같은 다크호스가 등장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본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힘들었던 친구가 부업으로 저가형 중국 게임의 한국어 번역과 프로그램 코딩을 맡았다가 조잡한 완성도를 보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중국차의 이미지도 몇 년 전 중국 스마트폰 게임을 접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중국차를 검색하면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다른 자동차 제조사의 유명 모델 디자인을 복사해서 조잡하게 제작한 모델’이다. 그러나 중국차는 알게 모르게 국내 시장에 들어와 있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북기은상에서 제작한 SUV ‘켄보 600’은 초반에 배정된 물량인 120대가 한 달 만에 모두 판매됐다.

 

 

올해 상하이모터쇼 현장에서 직접 만났던 중국의 자동차들은 품질 면에서도 월등히 상승했다. 흠을 잡아보기 위해 실내에서 가장 마감이 허술할 수 있는 대시보드 깊은 부분까지 손을 넣어봤지만, 날카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리자동차가 볼보의 기술을 빌려서 제작한 링크 앤 코 01의 경우 국내 자동차 관계자들이 철저히 둘러보고 모든 사항을 꼼꼼히 기록할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외의 자동차들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상승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은 중국차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GM의 기술이 적용된 컴팩트 SUV 바오준(Baojun) 510은 실내 품질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지만 무엇보다 풀옵션 모델 가격이 69,800 위안(한화 약 1,160 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라인업에 수동변속기만 지원한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만약 한국 시장 수출을 전제로 자동변속기를 적용하면 가격 상승 범위는 대략 200 만원, 여기에 다양한 제반 비용을 합해도 한국 판매 가격이 약 1,500 만원 선에서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차에 적용된 옵션을 살펴보면 최적의 방음을 위한 고품질의 사운드 인슐레이션, 일부 개방이 가능한 파노라마 선루프, 오토 에어컨, 무선 스마트키, 시동 버튼, 크루즈 컨트롤, 열선을 적용한 전동식 사이드미러, 8인치 LCD 스크린 등 국내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옵션들을 충실히 마련하고 있다. 국내의 소비자들이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가격과 옵션 문제를 단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데다가 품질에 대한 불만도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모터쇼 현장에서 서 있는 자동차만 살펴본 상태라 주행감각 또는 안전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 체리자동차가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컴팩트 SUV를 출품하면서 유럽 시장 공략을 노리고 있고, 광저우자동차 역시 SUV로 미국 시장 공략을 노리고 있다. 그만큼 유럽 시장 또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를 허가받을 수 있을 정도의 안전을 확보했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중국차의 안전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법규 미비에 의한 리콜 의지 부족, 종종 발견되는 조립품질 문제 등 국산 자동차들의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지금까지 자동차 업계는 국내 판매환경에 만족해 왔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산 자동차들이 들어와 이러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해준다면, 속절없이 안방을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국내 게임환경에 만족하면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국내 게임업계들이 중국산 게임인 소녀전선 하나에 속절없이 무너졌듯이 말이다. 그리고 안방을 내준 후에는 힘겨운 싸움만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현재 인력 가용 원활함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지만, 인력 가용이 너무나도 원활한 국내 게임업계가 현실에 안주하다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살펴보면 그 뒤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이제 국내 자동차 업계에 남은 의무는 단 하나라고 본다. 그것은 게임업계의 공습을 반면교사 삼아 자동차 업계만은 어이없는 반격을 당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 ‘유비무환’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다.

 

체스에서의 ‘폰’은 정말 보잘것없는 포지션이지만, 끝까지 도달하면 어떤 말로든 변신할 수 있어 순식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중국의 게임들을 모두 ‘폰’으로 봤던 국내 게임업계가 현재의 실력과 위치에만 안주했다가 소녀전선이라는 강력한 ‘폰’에 무너졌다는 사실은 그래서 국내 자동차 업계에도 큰 교훈을 주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자동차들 중에서도 강력한 ‘폰’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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