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러닝 온 더 클라우드, 렉서스 LC500h 시승기

조회수 2017. 11. 28. 12:56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가을에 막 접어든 어느 날, 용인 스피드웨이. 150km/h를 돌파한 최고출력 359마력(PS), 최대토크 35.7kg.m인 LC500h는 순식간에 속도게이지를 더 밀어 올린다. 10단계로 나눠진 변속기는 아직 6단이다.


이 구간은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가장 긴 가속 코스다. 전체적으로는 살짝 왼쪽으로 굽어 있고 수백미터가 내리막이다. 코너 진입 약 150m 전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으라는 인스트럭터 권봄이 씨의 무전이 들려온다. 최고속도를 찍고 급감속을 시작한다. LC500h는 마치 갓 말아둔 김밥에 기름을 바르듯 부드럽게 왼쪽으로 머리를 튼다.


무릇 이런 상징성 강한 차를 개발할 때에는 CEO가 개발 과정을 직접 챙기기 마련이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직원들이 다 만든 차를 타보고 '잘했네' 한 마디 던지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레이싱 수트와 헬멧을 갖춰 입고 서킷에서 LC500의 운전대를 잡았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렉서스의 새로운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기자는 묵직한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서 그가 LC500h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렉서스 속으로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고속코너 끝에는 오르막을 형성하며 급하게 왼쪽으로 돌아나가는 커브 두 곳이 등장한다. 노면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에 관성이 크게 작용한다.


일전에 다른 차로 이 구간을 빠져나갈 때는 엉덩이가 바깥으로 휙 틀어지면서 자주 미끄러졌다. 하지만, LC500h는 그런 게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 LC500의 자세제어장치가 다소 느리게 작동함에도 좀처럼 노면을 놓지 않는다.


좌우 롤링은 지그시 눌러주는 타입이다. 노면정보, 차체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몸에 전달하기 보다는 서스펜션을 다소 진정시키면서 눌러주는 타입이다. 스포츠모드에서도 마찬가지다.


LC500h의 10단 변속기는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부지런히 단수를 바꿔가며 오르내린다. 기자가 어릴 적 타던 '아빠차'는 4단이 전부였고, 좀 좋은 차는 여기에 기어를 하나 더 추가한 5단이었다. 이 순간 기자는 무려 10단을 누리고 있다.


사실 LC500h에 장착된 기계식 변속기는 4단이다. 여기에 토요타가 새로 개발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복잡하게 개입해 10단 변속기의 '효과'를 낸다.


렉서스는 기존 하이브리드용 CVT(무단변속기)뒤에 4단 기어박스를 덧대 1단으로 1,2,3단을, 2단으로 4,5,6단을, 3단으로 7,8,9단을, 마지막 4단에는 오버드라이브로 10단이 작동하도록 했다. 렉서스는 이를 '멀티 스테이지 하이브리드'로 부른다.


그저 운전재미만 10단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다. 기존 하이브리드 대비 엔진토크를 24%나 높게 뽑아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지금까지의 하이브리드차가 120km/h에서 6,000rpm에 도달했다면 멀티스테이지에서는 50km/h에서도 6,000rpm을 쓸 수 있다. 가속 성능이 월등히 높아진 것.


고속에서는 엔진 회전수를 크게 낮추면서 효율을 끌어올렸다. 하이브리드 차는 저속에서 전기모터를 주로 작동시키고 고속에서는 엔진만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일정 속도' 이상에서는 반드시 엔진이 켜지는데, 기존 토요타 하이브리드의 그 '일정 속도'는 70mk/h였다.


반면, LC500h의 '일정 속도'는 무려 140km/h로 2배나 높아졌다. 140km/h에서도 엔진을 끄고 전기모터로만 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무슨 전기차도 아니고 손흥민의 골감각에 박지성의 두 심장까지 더한 느낌이다.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안내 영상


패들시프트를 통한 변속은 아주 기민하다. 찰나의 순간에도 허투루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플라이휠에 전해지는 그 어떤 회전도 다 챙기려 애쓴다. 다만, 스포츠카인만큼 스포츠모드에서 좀 더 거친 느낌을 전달해줬다면 어땠을까 싶다.


렉서스표 GT카를 사는 사람들은 이미 브랜드 특성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사는 것일테니 스포츠모드에서 만큼은 살짝 거친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


스포츠모드를 작동시키면 일반 모드와의 차이가 극명하다. 계기반 옆 스포츠 모드 레버를 돌리는 순간, 전기모터가 선사하는 토크가 뒤통수와 뱃속 내장을 모두 뒤로 잡아당긴다. 기자는 여기서 무릎을 탁 쳤다. 렉서스가 얘기하는 새로운 하이브리드란 운전재미와 성능항샹이 핵심이다.


차에 오르기 전에는 LC500h의 질주 소리가 렉서스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사납다고 생각했다. 한국 토요타 사장님이 들려주는 LC500h 이야기의 몇마디를 놓칠 정도로 LC500h가 질주하는 소리는 우렁찼다. 그러나 가속페달을 밟으며 느낀 실내는 너무나 평온했다. 기자 머리에 꽉 낀 헬멧이 소리를 차단했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LC500h가 내는 우렁찬 V8 엔진음은 내가 원할때만 들을 수 있다. 사실 그 마저도 거칠지 않다. LC500h에 눈길을 보내는 어떤 중년이 있다면, 그리고 그가 자기 돈 내고 렉서스 스포츠카를 살 정도로 이런 차에 오픈마인드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고급스러운 소리다.


LC500h의 포효는 늦은 밤, 강남역 사거리를 질주하는 유럽산 스포츠카와는 성분이 완전히 다르다. 독일 혹은 이탈리아산 스포츠카 사운드를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LC500h이 숨쉬는 소리가 다소 심심할 수 있다. 노면 소음과 바람이 차체를 스치는 소리는 엄격하게 차단돼 있다. 렉서스표 스포츠카가 선사하는 청각적 심상은 포르쉐 911이 전하는 원초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피트인으로 들어오며 렉서스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근육질 유도 선수의 팔다리가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게 계산된 몸짓으로 허공을 가르는 상황이다. 왠지 이 유도선수는 공부까지 잘 할 것 같은 이미지다. 안경도 씌워야겠다.


LC500h에서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만 주목한다면 렉서스 디자이너들에 대한 모독이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이 차를 개발할 때, LC컨셉트카의 디자인을 바꾸지 않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구석을 제외하면 LC컨셉트와 LC500h의 디자인은 거의 같다.


얼굴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조립했을까'다. 화살촉 형상 헤드램프는 굽이치는 면과 선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복잡한 형상을 이룬다. 아마 지금까지 등장한 양산차 중에 면분할이 가장 많은 차일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면이 어찌됐든지 간에 스포츠카 디자인은 멋지면 그만이다. 스핀들 그릴은 그간 우리에게 자신을 수용해줄 것을 강요하다시피 했지만, 이제는 다른 형상을 집어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르익었다.


겉모습보다 더 와닿는 것은 실내다. 일단 타고 내리기가 쉽다. 낮고 넓게 설계된 대시보드는 개방감이 좋다. 실내 곳곳은 질좋은 가죽으로 감싸고 그 위에 금속 질감 부품을 올려 고급스럽기 그지 없다. 바닥에 깔린 매트는 마치 롤스로이스 양모매트처럼 두껍다. 911 매트의 세배 정도는 돼 보인다. 발 닿는 순간부터 LC500h의 다름을 느낀다.


뒷좌석은 태생적으로 좁을 수 밖에 없지만, 생각보다 등받이가 뒤로 누워 있는 탓에 키 175cm 기자가 엉덩이를 살짝 앞으로 빼고 앉으면 나름 편한 자세로 앉을 수 있다.


다른 스포츠카들은 이런저런 버튼을 빼곡히 집어넣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점을 디자인에서부터 어필한다. 반면, LC500h는 간결하다. 명색히 최첨단 스포츠카인데 이렇게 단순해도 되나 싶다. 하지만, 그게 LC500h의 매력이다. 머리아픈 기능들 몰라도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LC500h의 가격은 우리 돈 1억 8천만 원이다. 포르쉐 911 카레라S와 비슷한 수준이다. 두 모델이 직접적인 경쟁은 하게 되겠지만, 오늘 경험한 LC500h는 자동차계 후발 주자들이 항상 벤치 마킹하는 독일산 스포츠카와는 한발짝 거리가 있다.


LC500h이 추구하는 것은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이다. 이날 시승현장에서 렉서스 테스트 드라이버가 말한 것처럼 말리부 해변에서 우아하게 커피 한 잔 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차에 몸을 맡기는 장면을 상상하면 된다. 여기에 멀티스테이지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앞선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얹었으니 스포츠카로서는 아쉬울 게 별로 없다.


지금까지는, 아시아권 자동차 후발 주자들이 독일 스포츠카를 열심히 벤치마킹했다면, 이제는 렉서스 LC500h도 누군가가 벤치마킹 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된 것 같다.


신동빈 everybody-comeon@carlab.co.kr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