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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 차]대우자동차의 에스페로

조회수 2017. 11. 28. 16: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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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대우자동차(이하  대우차)의 에스페로(Espero)를 기억하는가? 베르토네가 빚어낸 날렵하고 수려한 외모를 비롯하여 독특하고 재치 있는 시도가 돋보였던 대우차의 에스페로는 90년대 초중반, 대우차의 준중형차로 판매된 모델이다. 영화 탑 건을 오마주한 광고로도 유명했다.



에스페로는 엣 대우자동차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큰 모델이다. 1955년 신진공업부터 시작해 새나라자동차, GM코리아, 새한자동차 시절을 거쳐간 30여년 만의 첫 독자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우차 계열에서 내놓았던 르망, 로얄 등의 차들은 대부분 GM 모델의 라이센스, 혹은 스킨체인지 수준의 모델들이었다. 이 때문에 8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서는 승용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에게 크게 밀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대우차도 독자모델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특히 대우차는 중형 세단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현대차의 2세대  쏘나타(Y2)를 타도할 수 있을 만한, 르망과 로얄 사이의  중형 세단을 원했다. 대우차의 첫 독자모델인 에스페로는 현대 쏘나타에 맞설 수 있는 전륜구동 중형세단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에스페로는 르망이 출시된 해인 1986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4년 뒤인 1990년도에 개발을 완료, ‘新중형세단’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시장에 출시하였다. 차명인 에스페로는 스페인어/에스페란토어로 ‘희망’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대우차로서는 ‘희망’을 걸었던 존재인 셈이다.


1990년 출시된 대우 에스페로의 스타일링은 란치아 스트라토스 등을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베르토네(Bertone)에 의뢰하여 완성되었다. 공기역학적 측면을 고려하여 디자인된 덕분에 당대 국내 완성차 중 가장 낮은  0.29 Cd에 불과한 공기저항계수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했다. 에스페로의 군더더기 하나  없이 날렵하고 스포티한 스타일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에스페로의 디자인을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존재했을 정도였다.



에스페로의 스타일링은 당대에는 실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애고 날카롭게 다듬은 프론트 마스크는 당대의 국산 승용차에서는 전례가 없던 것이었다. 굴곡을 전혀 주지 않고 평탄하게 윈드스크린까지 이어지는 매끈한 보닛 역시 특징적이다. 이 때문에 에스페로는 운전석에서 보닛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차체 형상에서는 전반적으로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선을  이용하여 속도감을 주었고, 당대의 국산 세단 중에서는 C필러의  형상이 눈에 띄게 완만한 각도를 이루고 있었다. 에스페로의 C필러는  둘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그 사이에 창을 하나 더 달아서 후방 시야 확보에 유리했다. 이 과정에서 C필러를 유리로 덮는 설계를 취하여 플로팅 루프 스타일을  연출한 점도 눈에 띈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로 인하여 뒤 도어의 창에 분할 바를 하나 더 넣는 바람에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후면의 스타일은 초기형과 그 이후 모델이 서로 다르다. 초기형의 경우에는 베르토네의 원안을 따른 형태로, 시트로엥 차종과  매우 유사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92년 마이너체인지 모델을  선보이면서 잘 알려진 콤비네이션 램프 형태로 변경되었다.



실내의 디자인에서도 시대를 앞서는 시도가 존재했다. 에스페로의 실내는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을 하나로 연결시킨 랩 어라운드 스타일을 연출했다. 이 뿐만 아니라, 도어에 위치한 송풍구, 도어트림과 유기적으로 이어진 형상의 구즈넥(Goose neck) 스타일  도어 핸들, 밑에서 위로 올려서 여는 도어 래치 등,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도입되었다. 파워윈도우 스위치의 경우, 초기형은  일부 옛 유럽산 자동차들처럼  플로어 콘솔 중앙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후기형에서는 운전석 도어트림 쪽으로 옮겨갔다. 초기형 모델은 당대의  유행 중 하나였던 디지털 속도계도 존재했다.


에스페로는 본래 중형세단으로서 개발된 만큼, 실내공간 확보에 힘썼다. 실내공간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전륜구동  플랫폼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후륜구동 방식을 사용한 종래의 대우 승용차에 비해 한층 넉넉한 뒷좌석 공간을 확보했다. 또한, 트렁크 공간으로 유명했던 대우차답게, 무려 560리터의 용량을 확보하여 당대의 중형 차종 중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에스페로는 이미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었던 르망의  플랫폼을 활용했다. 따라서 당시 우수한 승차감과 성능으로 호평받고 있었던 르망의 전륜 스트럿, 후륜 컴파운드 링크 방식의 서스펜션을 그대로 쓸 수 있었다. 또한, 본래 쏘나타급의 중형 세단으로 개발되고 있었기 때문에 중형차의 차급에 맞는 실내공간도 필요했다. 따라서 에스페로는 전반적으로 르망의 휠베이스를 확대한 기본 구조를 갖게 되었다. 이로써 개발비용의 절감과 함께 기술적인 위험부담도 덜 수 있었다.



초기 에스페로는 르망 임팩트에 사용했던 2.0리터 CFI 엔진을 얹었다. 이  엔진은 100마력/5,400rpm의 최고출력과 16.2kg.m/3,200rpm의 최대토크를 냈다. 그러나 이 엔진은  초기형에서만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대우자동차가 영국 로터스의 자문을 받아 독자 개발한 1.5리터 DOHC 엔진이 주력이 된다. 에스페로는 대우자동차의 첫 독자모델인  동시에 처음으로 독자개발 엔진을 얹은 차인 셈이다. 91년식 모델부터 탑재되기 시작한 이 엔진은 100마력/5,000rpm의 최고출력과 14.8kg.m/3,4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1990년 9월, 新중형세단을 표방하며 등장한 에스페로는 출시 초기부터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당시 대한민국 시장에서 중형세단으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바로 한 달 뒤인 10월에 ‘준중형차’를 표방하고 나선 현대 엘란트라의 등장은 시장에서 에스페로의 포지셔닝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차의 크기를 그 차의 위신이라 여기는 풍조가 지금보다 훨씬 짙었기에,  지금보다도 차체 크기에 민감한 시절이었다. 당시 현대 쏘나타의 크기가 4,680X1,750X1,410mm였던 반면, 에스페로는 4,615X1,718X1,382mm였다. 쏘나타보다 65mm 짧고 32mm 좁았으며,  28mm 낮았다. 시대를 앞선 스타일링도 보수적인 경향이 짙었던 당시의 세단 시장에서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스타일로 비춰졌다. 여기에 대우차가 1991년도에  로얄 프린스를 스킨체인지한 또 다른 중형세단, ‘프린스’를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비슷한 배기량의 중형 세단이 두 개의 차종으로 양분화되면서  서로 판매간섭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우차는 에스페로를 엘란트라를 상대하기  위한 ‘준중형차’로 격을 내렸다. 그리고 중형세단으로는 프린스를 더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때문에  에스페로는 단종되는 그날까지 중형세단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1.5리터 엔진이 주력이었던 엘란트라와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에스페로에는 대우차가 독자 개발한 1.5리터 DOHC 엔진을  실었다. 또한, 후면의 디자인을 잘 알려진 콤비네이션 램프  형태로 변경하고 사양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하여 상품성을 키웠다. 한창 준중형차로서 팔리고 있었던 1993년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큰 폭으로 변경하고 안테나 위치를 변경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또한, 1994년에는 새로이 1.8리터  MPFi 엔진과 1.6리터 SOHC LPG 파워트레인을 추가했다. 1996년에는 접이식 사이드미러를  채용했다.



대우자동차의 에스페로는 비록 당초 의도했던 ‘新중형세단’으로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준중형차’로 분류된 뒤로는 나쁘지 않은 실적을 올렸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차 크기에 특히 민감했던 당시의 정서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쏘나타보다 작다는  이유로 중형차 취급을 못 받았다가 준중형차로 내려오니 졸지에 동급에서 비교를 거부하는 압도적인 덩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중형차의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이 ‘준중형차’ 에스페로의 꾸준한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에스페로는 중형차의 차체를 가지면서 소형급의 엔진을 품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준중형차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에스페로의  판매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여러 고난을 겪어야 했다. 특히 독자개발한 1.5리터 DOHC 엔진의 신뢰성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엔진 부품의 정밀도가 떨어져 엔진 오일 누유나 노킹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급가속 시 소음과 진동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초기형 모델은 전반적인 조립 및 마감 품질이 특히 떨어졌다. 대우차는  에스페로를 끊임없이 개량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우차는 대대적인 개선을 거친 94년식 모델 출시 이후 ‘에스페로 품질평가단’을 모집했다. 100명의 소비자에게 차를 1대씩 1년간 대여해 주고 품질을 직접 경험해 보라는 취지에서 실시한  이벤트였다.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는 중고차 가격으로 차를 매입할 수 있게 하는 파격적인 특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에스페로 품질평가단에 참여한 소비자들 중 95명 이상이 구매  의사를 타전하기에 이른다. 이 작전은 꽤나 성공적이어서 에스페로에 대한 나쁜 평가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해결되지  못한 문제점도 존재했다. 당시의 기술로는 중형차에 준하는 차체에  1.5리터 엔진은 필연적으로 동력성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에스페로가 ‘힘이 부족한 차’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변속기는 자동과 수동 모두 기어비 설정에 문제가 있어, 엔진의 효율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에스페로는 ‘연비가  나쁜 차’라는 인식도 있었다. 게다가 ‘대우차’라는 이유로 중고차 시장의 평가도 좋지 않아, 구매를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 대우차의 고질병 중 하나인 부실한  마무리 역시 단종되는 그날까지 완전히 고쳐지지는 못했다.



대우차의 에스페로는 대우차의 첫 독자모델이자, 처음으로 자체개발 엔진을 사용한 대우의 제대로 된 의미의 처녀작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끊임없는 대우차의 개선 노력과 기민한 시장 대응을 통해 첫 작품으로서는 나름대로 준수한 실적을 올렸다. 에스페로는 90년 9월부터 96년 11월까지 54만대가  넘게 생산되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인 31만대 가량이 내수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수출용 모델의 생산은 1998년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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