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 미모의 댓가는 값비싸다

조회수 2017. 11. 28. 13: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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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는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브랜드다.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1만601대를 팔아치우며 전년대비 47.8%의 기록적인 판매 성장을 이뤄냈다. 2005년 이후 11년 연속 성장이다. SUV만 파는 회사가 50% 가까운 성장율을 기록하고 수입차 ‘1만대 클럽’에 입성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영국 본사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지난 4월, 지역 모터쇼인 서울 모터쇼에 2주 전 제네바에서 데뷔한 레인지로버 벨라를 선보인 것만 봐도 그렇다. 신차 출시 스케쥴도 유럽, 북미 등과 거의 비슷하다. 엔트리 모델인 디스커버리 스포츠로 대중적 인기를 끈 뒤 올해는 1억원 내외의 프리미엄 신차를 투입해 볼륨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야심이다.

레인지로버 벨라는 랜드로버의 자신감을 잘 보여주는 차다. 디자이너의 역량을 유감 없이 발휘한 아름다운 미모로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동시에 예리하게 벼린 주행 성능을 강조한다. 지난 70년간 랜드로버 브랜드에 새겨진 ‘우직한 오프로더’ 이미지를 벗어 던지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랜드로버는 아예 이 차를 ‘브랜드 역사 상 최고의 온로드 주행 성능’을 지녔다고 소개한다.

레인지로버 벨라는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사이에서 디자인과 실용성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탄생했다. 벨라(Velar)라는 이름은 1세대 레인지로버 프로토타입에 붙여졌던 코드명에서 유래했다. ‘베일에 싸였다’는 뜻의 라틴어 ‘velari’에서 유래했다.

당시 랜드로버는 투박한 오프로더에 안락함과 럭셔리함을 더한 신개념 자동차를 출시 전까지 꽁꽁 숨기기 위해 이런 코드명을 썼다는 후문이다. 레인지로버 벨라 역시’ 온로드에서 잘 달리는 랜드로버’라는 새 콘셉트를 제시하며 깜짝 등장했으니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레인지로버 벨라의 가장 큰 경쟁력은 역시 디자인이다. 2011년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출시된 이래 랜드로버는 디자인 브랜드로 거듭났다. 미래지향적이면서 SUV의 묵직함을 잃지 않은 랜드로버의 디자인은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벨라의 디자인은 이보크의 것을 계승하면서도 한 층 발전된, 미래 랜드로버의 디자인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앞모습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가느다란 헤드라이트는 벨라의 전면부를 넓어보이게 만든다. 범퍼 하단의 디테일은 스포티함을 더한다. 기존 레인지로버 라인업이 앞범퍼를 깎아 올리고 스키드 플레이트를 덧댄 것과 달리 벨라는 무게중심을 낮춰 온로드에서의 스포티한 주행감각을 시각적으로 강조한 게 특징.

후면부로 갈 수록 비례는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한껏 뻗은 보닛 뒷편 윈드실드는 날렵하게 누워 있고, 클래식 레인지로버처럼 리어 오버행을 잡아 늘렸다. 웅장한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늘씬하다. 디테일이 돋보이는 테일램프와 독특한 리플렉터 및 후방안개등 배치가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잠금을 해제하면 튀어나오는 근사한 도어 핸들에서 놀라긴 이르다. 인테리어는 그야말로 굉장하다. 초대형 디스플레이를 덩그러니 설치해 둔 테슬라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다. 전통적인 센터페시아 배치를 계승하면서도 과감히 모든 기능을 터치스크린에 집어넣었다. 두 개로 나뉜 디스플레이는 모두 정전식 터치를 지원한다.

인터페이스 배치가 운전하면서 조작하기에 썩 효율적이진 않지만, 시각적 만족도는 정말 굉장하다. 제네바에서 레인지로버 벨라가 처음 공개됐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이 차를 콘셉트카로 착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단 디스플레이에는 세 개의 다이얼이 달려 있는데, 메뉴에 따라 다이얼의 기능이 수시로 바뀐다. 에어컨 온도와 풍량을 조절하다가도 지형반응 시스템의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이 된다.

이 첨단 인포테인먼트가 아니더라도 실내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레인지로버답게 가죽은 보드랍고 디테일은 화려하다. 영국 국기를 형상화한 패턴이 대쉬보드와 시트, 스피커 등에 적용돼 있다. 이 패턴들은 센터페시아의 단순화로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실내에 변주를 준다.

다만 공간 자체가 넓은 편은 아니다. 불룩 튀어나온 센터 터널 탓에 앞좌석은 넉넉하기보단 꽉 조여진 조종석같은 느낌이고, 뒷좌석도 아주 넉넉하지는 않다.

레인지로버 벨라는 재규어 F-페이스, XF 등과 iQ 플랫폼을 공유한다. F-페이스와는 이란성 쌍둥이 관계다. 전장은 벨라가 좀 더 길지만 휠베이스는 2874mm로 동일하다. 벨라가 이렇다 할 도로 주행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깜짝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에도 불과 1년 전 출시된 F-페이스와 비슷한 설계가 일조했다.

알루미늄 비중을 82%까지 높여 경량 고강성을 이뤄낸 차체에는 세 종류의 엔진이 얹힌다. 2.0L 직렬4기통 인제니움 디젤과 3.0L V6 트윈터보 디젤, 그리고 3.0L V6 슈퍼차저 가솔린 엔진 등이다. 셋 모두 성능을 끌어올린 고성능 사양이다. 벨라를 퍼포먼스형 SUV로 포지셔닝하겠다는 계획이 잘 드러난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3.0 디젤. 트윈터보로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 71.4kg.m을 낸다. 0-100km/h 가속은 6.5초면 마무리된다. 앞서 출시된 디스커버리 5의 V6 디젤이 최고출력 258마력, 최대토크 61.2kg.m인 것과 비교하면 15% 이상 강한 출력과 토크다. 가솔린 버전은 재규어 F-타입 S에 탑재되는 380마력짜리 엔진을 탑재, 0-100km/h 가속을 5.7초면 마친다. 웬만한 스포츠카 부럽지 않은 성능이다. 변속기는 전 모델 ZF제 8속 토크컨버터가 기본이다.

6기통 디젤의 최대 장점은 부드러움이다. 아이들링의 소음과 진동이 극도로 억제돼 실내에서는 가솔린 모델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주행 중의 회전질감은 더 매끄럽다. 초반에 다소 터보래그가 느껴지는 디스커버리와 달리 초기 발진부터 토크가 선형적으로 뿜어져 나와 시내 주행에서의 스트레스도 적다.

도심 주행에 특화된 레인지로버 라인업 중에서도 벨라는 특히나 온로드 주행에 최적화된 세팅이다. 당장 시트 포지션부터 낮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승용차보다 살짝 높은 정도. 서스펜션 역시 단단하게 다져졌다. 6기통 모델은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 사양이다. 고속 주행에서는 무게중심을 낮춰 롤링을 억제한다.

고속 주행 감각은 이전에 랜드로버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느낌이다. 오히려 랜드로버보다는 재규어에 가깝다. 제법 속도를 높여도 노면을 움켜쥐고 안정적으로 내달린다. 하지만 가속감은 과격하기보단 중후하다. 300마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치지만 몸이 푹 꺼지기보다는 지치지 않고 일관되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온로드 주행 성능에 초점을 맞춘 벨라지만, 랜드로버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오프로드 성능도 기본으로 갖췄다. 지형반응 시스템과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 로우 트랙션 런치, 힐 디센트 컨트롤 등 다양한 주행 기능이 탑재됐다. 액티브 리어 로킹 디퍼렌셜과 지상고를 251mm까지 올릴 수 있는 에어 서스펜션도 우수한 오프로드 성능에 일조한다. 이번 시승 코스에서는 오프로드를 체험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 잘 빠진 친구도 랜드로버 아닌가? 초록색 타원형 뱃지는 경험해 보지 않아도 벨라의 오프로드 성능에 대한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

레인지로버 벨라의 수려한 디자인과 경쾌한 퍼포먼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자면 지면이 부족하다. 그럼 이제 현실적으로 계산기를 두들겨 볼 때다. 레인지로버 벨라의 가격대는 만만치 않다. 기본 모델인 D240 S가 9850만원, 가장 비싼 D300 R-다이내믹 HSE는 1억2620만원에 달한다. 각종 프리미엄 옵션이 빵빵하게 담긴 D300 퍼스트 에디션은 1억4340만원이나 한다. 상위 모델인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3.0 디젤 오토바이오그라피 다이내믹이 1억4950만원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가격이다.

랜드로버 관계자는 너무 크지 않은 차체에 잘 생긴 얼굴, 우수한 퍼포먼스 등을 꼽으며 주 경쟁상대를 포르쉐 마칸으로 지목했지만, 마칸의 가격은 7560만~9940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포르쉐는 마음에 드는 옵션 몇 가지를 넣으면 가격이 훌쩍 뛰어오르지만, 심리적인 가격장벽은 상대적으로 낮다. 1억원대면 더 몸집이 큰 메르세데스-벤츠 GLE나 BMW X5도 사정권에 들어온다.

물론 랜드로버, 특히나 레인지로버는 ‘가성비’를 보고 살 차는 아니다. 넓은 공간과 실용성, 험지주파능력을 원한다면 더 크고 저렴한 디스커버리를 사면 된다. 레인지로버는 실용성이 아닌 디자인과 브랜드를 사는 차다. 아름다움의 댓가는 늘 비싼 법이다. 자,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SUV를 위해 1억원을 지불할 수 있는가?


이재욱 에디터 jw.lee@globalm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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