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태양처럼 화끈한, 렉서스 LC

조회수 2017. 11. 28. 12: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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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포털 사이트에서 빅뱅 ‘태양 차’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다. 주인공은 LC. 렉서스가 선보인 최신 스포츠카다. 정열적인 컬러와 비현실적 디자인, 강력한 성능으로 똘똘 뭉쳐 도전장을 내밀었다. 데뷔 초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면, 오늘은 운동신경을 뽐낼 차례다. 그것도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글 강준기 기자

사진 렉서스, 강준기

<왼쪽 : 사토 코지 / 오른쪽 : 슈이치 오자키>

“LC는 드라이버와 일체감을 강조한 자동차예요.” 일본에서 건너온 낯선 인물이 첫 인사를 건넸다. 바로 렉서스 타쿠미(匠) 드라이버 슈이치 오자키다. 타쿠미는 특별한 기술과 경험 지닌 직원을 뜻하는 개념적 호칭. 사내에선 이들을 ‘렉서스 기능 전문가(LX)’라고 부른다. 시각·촉각만으로 0.1㎜의 간격을 구분하는 타쿠미도 있고, ‘운전의 신’ 타쿠미도 있다. 오자키는 후자다.

그의 사단이 LC를 개발할 때 함께한 무리가 있었다. 모든 스포츠카의 라이벌, 포르쉐 911. 뿐만 아니라 BMW 6시리즈, 재규어 F-타입, 메르세데스-벤츠 SL,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도 스파링 상대로 참여했다. 물론 렉서스가 이들의 장기를 버무려 빚은 건 아니다. 상대의 장점을 흡수해 전 과목에서 뛰어난 자동차를 만드는 게 핵심 개발 목표였다.

그 결과 LC는 모든 도로에서 어울리는 에브리데이 스포츠카로 세상에 나왔다. 소수점 단위 성능 경쟁에 집착하지 않았다. 가령, 서킷에선 포르쉐처럼 날카로운 핸들링을 뽐낼 줄 안다. 어두운 밤하늘에선 감성을 촉촉이 적신다. 마세라티처럼 웅장한 연주 실력도 갖췄다. LC가 ‘스펙’이 아닌 ‘Emotion(감성)’을 머리글자로 내세운 이유다.

“사실 엔지니어 입장에서 불가능한 도전이었습니다.” 이번엔 렉서스 LC 치프 엔지니어 사토 코지가 한 발자국 나왔다. LF-LC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실루엣은 그 어떤 쿠페보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엔지니어 입장은 또 다른 문제였다. 콘셉트 카를 그대로 양산하기엔 풀 수 없는 숙제들이 가득했던 탓이다.

“불가능하기에 도전해야 합니다.” 양보할 수 없는 싸움에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팔을 걷었다. 아키오는 진짜 자동차 마니아다. 사장이기 전에 토요타의 마스터 드라이버. 뉘르부르크링 24시 레이스에 출전하며, 토요타 WRC 팀을 직접 진두지휘 한다. 그의 에너지가 4천 명 직원들의 꿈을 부풀렸다. LF-LC가 ‘일장춘몽’이 아닌 실화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낮고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모든 걸 백지부터 설계했다. 심지어 와이퍼는 기존 부품을 쓸 수 없어 LC만을 위해 새로 설계했다. 대개 와이퍼는 1개 모터로 두 개의 날을 움직인다. 그런데 LC는 보닛이 낮아 필요한 부품을 우겨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각 와이퍼 당 하나의 모터를 연결해 따로 움직이게끔 빚었다.

‘리듬’에 모든 걸 걸다.

이번 행사엔 LC500과 LC500h 모두 자리했다. 꽁무니에 붙은 배지를 빼면 둘 사이에 디자인 차이는 없다. 얼굴이 지은 표정은 여느 렉서스보다 날카롭다. 큼직한 스핀들 그릴 안쪽엔 3차원 패턴을 빼곡하게 채웠다. 특히 보닛 주름과 A필러, 그릴로 휘몰아치는 선이 압권이다. 또한, A필러에서 앞바퀴 펜더로 부푼 라인은 인간의 목 근육처럼 정교하다.

사실 렉서스의 디자인은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마치 양복입고 진공청소기 돌리는 사람처럼, 말끔한 차체와 부담스러운 그릴이 조화롭지 않았다. 그런데 LC의 디자인은 눈이 편안하다. 특히 얼굴에서 잡아끄는 힘이 상당하다. 휠은 자그마치 21인치. 객실은 활시위 바짝 당긴 활대처럼 긴장감 넘친다.

얼굴을 훑은 나의 시선은 루프와 꽁무니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릴부터 보닛, A필러를 거쳐 플로팅 루프(Floating Roof)에 정박한다. 게다가 도어 손잡이는 차체 표면에 숨겨 시선 분산을 없앴다. 응집력이 상당하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760×1,920×1,345㎜. 포르쉐 911과 비교하면 261㎜ 길고 68㎜ 넓다.

단순히 아름다운 비율만 좇은 건 아니다. 디자이너의 입김이 강했지만 공기와 싸우려는 흔적도 곳곳에 스몄다. 범퍼로 흡입한 공기는 브레이크를 식히고 에어벤트로 흐른다. 뒷바퀴로 찬바람을 양껏 보낸 뒤 디퓨저로 흘려보낸다. 트렁크 표면엔 가변 스포일러가 자리했다. 각 패널 사이의 유격이 없어 존재를 눈치 채기 힘들다. 시속 80㎞를 넘기면 날개를 활짝 펼친다.

이토록 멋스러운 겉모습도 예고편에 불과하다. 속살의 ‘훈남지수’는 한 술 더 뜬다. 사토 코지가 주장한 ‘이모션’의 방점을 찍기 때문. 운전석에 앉으면 모든 공간이 나를 조명한다. 덕분에 특별한 기분마저 든다. 오목한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 등이 ‘감성지수’를 높인다. 더듬이처럼 계기판 양쪽에 자리한 스위치도 여느 스포츠카엔 볼 수 없는 조형이다.

진가는 서킷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개 주행모드 선택 버튼은 기어레버 주변부에 있다. 그러나 LC는 계기판 오른쪽 더듬이에 달렸다. 덕분에 운전 중 앞쪽 시선을 놓지 않으면서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 또한, 스티어링 휠과 시트의 조절 범위가 커 자세 맞추기도 좋다. 자극적인 조미료로 스펙 경쟁에 뛰어든 동급 경쟁자보다 ‘인간 친화적’이다.

통상 알칸타라(스웨이드의 질감을 재현하되, 내구성까지 챙긴 인조가죽) 씌운 의자는 통풍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데 LC는 알칸타라에 구멍을 송송 뚫고 석션 타입의 통풍 장비를 심었다. 덕분에 서킷에서 탑승자의 몸을 잘 붙들 뿐만 아니라 쾌적함까지 챙기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13개 스피커가 똬리 튼 마크레빈슨 오디오도 남다른 존재감을 건드는 요소다.

디자인 감상을 끝내고 서킷으로 뛰어들었다. 첫 번째 파트너는 LC500. 헬멧을 쓰고 자세를 맞춘 다음 출발 준비를 맞췄다. 시동 버튼을 누른 순간, 독특한 V8 사운드가 귓가를 가득 메우며 긴장감을 높인다. “렉서스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어?” 혼잣말로 그 순간의 감성을 즐겼다.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와 스파링한 결과물이 나타났다.

요즘 자동차처럼 ‘사운드 제너레이터’라고 부르는 별도의 장비를 더하지도 않았다. 사토 코지는 “엔진이 갖고 있는 고유의 주파수를 강조했다”며 “인간이 가장 듣기 좋은 주파수 영역을 살리고, 필요 없는 주파수를 ‘노이즈 캔슬링’ 기술로 없앴다”고 밝혔다. RC F나 GS F가 품은 정제된, 때로는 심심한 사운드와 180° 다르다.

“센터페시아 모니터에서 엔진과 섀시의 반응을 취향대로 조절하세요.” 무전기를 통해 색다른 지시가 내려왔다. 단순히 럭셔리 GT로 생각한 머릿속에 찬물을 끼얹었다. 주행 모드와 곁들이면 운전자가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다. 내가 선택한 패는 스포트 플러스+스포트(엔진)+컴포트(섀시). 피트 바깥으로 나와 서킷에 합류했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의 첫 번째 코너는 오른쪽 180°로 완만하게 꺾인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스티어링 휠을 트는 순간, 예민한 앞머리에 깜짝 놀랐다. 여유로운 감각으로 해쳐나가는 RC F와 성격 차이가 두드러진다. 가벼운 조작만으로 차체는 이미 진입 태세를 갖춘다. 덕분에 운전자의 두뇌와 차체가 하나로 연결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독특한 질감이다.

평범하게 생긴 스티어링 휠도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주행 성능 개발을 담당한 타쿠미는 직접 감압 센서가 부착된 장갑을 끼고 스티어링 조타 시 압력 분포를 해석했다. 그 결과 손바닥 중앙에 꼭 맞는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 표면을 매끄럽게 빚었다. 반대로 스포크 뒤쪽은 얇게 매만졌다. 심지어 패들 시프터는 흔한 플라스틱이 아닌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었다. 그 만큼 LC는 모든 장비를 세심하게 챙겨 전선에 뛰어들었다.

LC500과 6랩을 돈 후, 오자키에게 물었다. “개발 과정에서 포르쉐 911과 BMW 6시리즈가 참여했다. 이 둘과 비교했을 때 LC가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 그가 답했다. “리듬입니다.” 가속 성능 또는 서스펜션의 기술적 설명을 예상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그는 “모든 움직임에서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렉서스 최초로 개발한 10단 자동변속기는 각 단의 전개 과정을 눈치 채기 힘들었다. 많은 기어가 서킷에서 변덕 부릴까 염려했지만 기우였다. 오자키는 “1~4단을 근접 기어비(Close-ratio)로 개발했다”며 “가속과 사운드, 변속 등 가속할 때 필요한 모든 요소를 리듬감 있게 버무렸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드라이버 마인드 인덱스’ 기능을 심었다. 중력과 주행 상태, 운전자의 조작을 읽어 기어 변속에 반영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운전자의 템포에 맞춰 아랫단을 물거나 윗단으로 변속한다. 사토 코지는 “자동차가 운전자의 기분을 알아채는 느낌에 가깝다”며 “기어를 10단으로 쪼갰을 때 운전자가 가장 역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럴까. 서킷에서 느낀 LC500은 모든 과정이 드라마틱하다. 전희 없이 절정에 다다르는 터보와 달리, LC500의 심장은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덕분에 과격한 주행에도 자신감이 점점 쌓인다. 급격한 하중이동에도, 스티어링 휠 조작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함께 참여한 프로 레이싱 드라이버는 “일부러 자세를 무너트리려 과격하게 코너를 공략했지만, 쉽지 않았다”며 LC를 평가했다.

예민한 감각은 발끝에서도 느껴진다. 코너 탈출 시 가벼운 페달 조작에도 하중이 뒤로 빠져 애를 먹었다. 그러나 적응하면 운전자와 한 몸이 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렉서스는 다판 록업 클러치와 다이내믹 록업 댐퍼를 짝지었다. 덕분에 패들 시프터로 주무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토크컨버터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각 단을 절도 있게 문다.

마지막 3랩은 LC500h와 함께했다. V6 3.5L 가솔린 엔진과 두 개의 전기 모터, 리튬-이온 배터리를 짝지은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핵심은 ‘멀티 스테이지 하이브리드’.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전기 모터 두 개로 구동력을 주물러 무단변속기 효과를 낸다. 그래서 ‘e-CVT’다. 그런데 LC500h의 시스템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e-CVT에 아이신제 4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렸다. 가령, 1단 기어엔 가상 기어 1~3단을, 2단 기어엔 가상 기어 4~6단을 짝지었다. 3단 기어는 가상 기어 7~9단을 물리고 마지막 4단 기어는 10단 역할을 맡는다. 즉, 가상과 실제 기어를 조합해 10단 변속기로 ‘빙의’한다. 운전자는 수동 모드로 1~10단을 오르내릴 수 있고, 전기 모드만으로 시속 140㎞까지 가속할 수 있다.

렉서스 LC. 라인업을 부풀리기 위한 모델이 아닌, 렉서스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자동차다. ‘타도 911’을 외친 후발주자들은 랩타임과 가속력 등 뛰어난 수치를 제공해야 하는 주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계’들의 경쟁에서 LC가 바라보는 시선은 이들과 달랐다. 그가 주장하는 ‘오모테나시(환대)’처럼 럭셔리의 본질인 ‘인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점에서 LC는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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