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세련된 취향을 드러내고 싶다면, 캐딜락 CT6

조회수 2019. 1. 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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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기자 생활을 하다보면, 주변 지인들로부터 차 구입 문의를 종종 받는다. 그 중 절반은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다. 나이도 다양하다. 30대 젊은 직장인부터 40~50대 중년층까지 독일제 세단을 드림 카로 삼는다. 물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을 구매해서 후회하는 경우는 드물다. 뛰어난 완성도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까지 갖췄으니까.

도심에서 운전하다보면, “우와, 벤츠다”하는 감탄사는 쏙 들어간 지 오래다. 무채색 E-클래스를 하루에도 수십 대씩 마주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국내 수입차 시장 판매 1위가 E 300 4매틱(8,336대), 2위가 E 300(7,816대)이다. 수입차 타면서 누리고픈 ‘희소가치’도 희미해졌고, 세련된 취향을 과시하고픈 욕구도 달성하기 힘들다.



그러나 시선을 살짝 옮기면 비슷한 가격으로 손에 쥘 수 있는 차가 많다. 오늘 소개할 캐딜락 CT6도 그 중에 하나다. 물론 E-클래스의 대항마는 ‘동생’ CTS가 맞다. 그러나 독일제 세단을 무너뜨릴 ‘한 방’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CT6는 한 체급 위 대형 세단이지만, 6천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독일제 세단에 싫증난 소비자를 유혹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운전기사로 오해받지 않아도 될 외모

짧은 오버행이 인상적이다.

사실 ‘대안’이라는 말이 캐딜락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 1902년부터 시작해 100년 넘는 역사 품은 럭셔리 브랜드니까. 쉐보레 등이 속한 미국 GM(제너럴모터스) 소속으로, 수많은 고급 세단을 빚어왔다. CT6는 2016년에 첫 등장한 캐딜락의 플래그십 모델로, 지난 1996년 단종 된 플리트우드의 계보를 잇는 뒷바퀴 굴림(FR) 풀 사이즈 세단이다.

그러나 오래 전 미국 차의 넉넉한 덩치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5,185×1,880×1,485㎜. 휠베이스는 3,109㎜로 제네시스 G90와 비슷한 덩치를 뽐내지만, 매끈한 외모와 반듯한 면 처리로 큰 체격을 교묘히 감췄다. ‘툭툭’ 꺾이는 캐릭터 라인과 거대한 콧날, 세로로 길쭉한 앞뒤 램프도 포인트. 곡선으로 빚은 E-클래스와 정반대의 접근이다.




개인적으로 표정보다 뒤태에 시선이 쏠린다. 플래그십 세단이지만, 머플러를 밖으로 멋지게 노출시킨 점도 흥미롭다. 언뜻 보면 직선으로 단순하게 구성한 듯하지만, ‘깨알’ 같은 디테일이 숨어있다. 가령, 트렁크 리드는 엠블럼을 중심으로 두 개의 면이 교차하며 긴장감을 만든다. LED 테일램프 속엔 캐딜락 엠블럼을 심고 램프 가장자리를 크롬으로 둘렀다.



CT6를 E-클래스의 대안으로 꼽은 이유는 실내에도 있다. 통상 대형 세단은 느끼한 색감의 나무 장식과 크롬으로 치장해 운전재미와는 담을 쌓았다. 그러나 CT6는 젊은 감성으로 똘똘 뭉쳤다. 각종 아날로그 버튼은 줄이고 큼직한 10.2인치 터치스크린을 중심으로 골격을 짰다. 대시보드를 가로 지르는 CFRP(카본섬유강화플라스틱) 장식도 남다른 포인트다.






첫인상 3초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인상이 3초 내에 결정된다는 의미다. 자동차도 그렇다. 운전대를 쥐는 순간 느낌이 온다. 넉넉하되 옆구리를 잘 받치는 시트와 두툼한 스티어링 휠, 기어레버 등이 운전욕구를 자극한다. 패들 시프트는 흔한 플라스틱 대신 마그네슘을 깎아 얹었다. 열선 및 통풍 기능은 기본. 동반석까지 마사지 기능을 심었다.


트렁크 용량은 433L로 다소 부족하다.

반면, 뒷좌석은 3m 넘는 휠베이스가 무색하다. 앞좌석 등받이에 모니터를 달았지만, 플래그십 세단에서 기대해볼만 한 풍성한 전자장비는 찾을 수 없다. 암레스트는 컵홀더 등 기본적인 기능만 갖췄다. 측면 햇빛 가리개는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며 무릎공간은 BMW 7시리즈 등 경쟁상대보다 부족하다. 즉, CT6는 뒷자리보다 운전대가 탐나는 오너 드라이브 세단이다. 트렁크 용량은 433L로 ‘동생’ 쉐보레 말리부(447L)보다 부족하다.

밑바탕 삼은 뼈대도 주목할 만하다. CT6를 위해 새로 설계한 오메가 플랫폼이다. 총 64%에 달하는 부위를 알루미늄으로 빚고 11종의 복합소재를 활용한 결과, CT6 터보 기준 공차중량 1,735㎏의 가벼운 무게를 달성할 수 있었다. 제네시스 G90 3.8(뒷바퀴 굴림 기준)보다 285㎏ 가벼울 뿐 아니라, 한 체급 아래인 메르세데스-벤츠 E 300보다도 5㎏ 적게 나간다.

2.0L 터보와 3.6L 가솔린 등 두 가지 심장 갖춰



CT6의 보닛 속엔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과 V6 3.6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 등 두 가지 심장이 들어간다. 길이 5m 넘는 ‘덩치’와 2.0L 터보 엔진 조합이 퍽 흥미롭다. 최고출력 269마력, 최대토크 41.0㎏‧m를 뿜으며 0→시속 100㎞ 가속을 6.1초에 끊는다. 복합연비는 1L 당 10.2㎞로 성능과 효율, 저렴한 세금까지 세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았다.

오늘 소개할 모델은 CT6 플래티넘으로 최고출력 360마력, 최대토크 39.4㎏‧m를 뿜는다.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과 맞물려 0→시속 100㎞ 가속을 5.9초에 마친다. 2.0L 터보 모델과 불과 0.2초 차이지만, 6기통 엔진 고유의 넉넉한 감성을 기대하는 소비자에겐 더 알맞다. 제원이 암시하듯, CT6는 빠른 달리기 성능으로 운전재미까지 갖춘 대형 세단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가벼운 무게가 단박에 와 닿는다. 대형 세단 특유의 둔한 느낌보단, 기대 이상 산뜻하게 앞머리를 이끈다. 짧은 오버행과 함께 심장을 캐빈 쪽으로 바짝 당겨 얹은 결과다. 가볍고 단단한 차체와 맞물려 운전대 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쉐보레 말리부 등 그룹 내 대표 세단에서 느낄 수 있는 주행질감이 CT6에서 최종단계로 진화한 기분이다.

그러나 기함 칭호에 걸맞은, 도로와 단절된 느낌의 승차감을 원하는 소비자에겐 맞지 않는다. 탄탄한 하체는 자잘한 노면 요철은 거르지만, 기대 이상 다양한 정보를 엉덩이로 보낸다. 미제 럭셔리 세단의 폭신한 승차감을 예상했다면, CT6는 되레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특히 리어 서스펜션이 단단해, 방지턱을 빠른 속도로 넘을 때 엉덩이가 꽤 알싸하다.



오히려 BMW 5시리즈처럼 굽잇길에서 들쑤시는 재미가 있다.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 시스템이 1초 당 1,000회 이상 노면 상태를 감지한다. 댐퍼 안의 자성체가 전휴의 흐름에 따라 정렬하고 흩어지면서 댐핑 압력을 주무른다. 여기에 4휠 스티어링 시스템을 엮었는데, 저속에선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 휠베이스가 줄어드는 효과를 얻었다.

덕분에 연속되는 코너에서도 허둥대는 느낌은커녕, 컴팩트 세단을 모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A필러를 얇게 빚은 결과, 실내에선 큰 덩치가 부담스럽지 않다. 반대로 시속 70㎞ 이상에선 뒷바퀴를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최대 5°까지 비트는데, 차선을 바꿀 때 수평 이동하는 듯한 독특한 안정감을 받을 수 있다. 20인치 휠과 245/40 R20의 타이어도 한 몫 한다.



4휠 스티어링 덕분에 골목길이나 유턴 차선에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회전직경이 11.3m에 불과한 까닭이다. 참고로 메르세데스-벤츠 CLS가 11.9m, 포르쉐 파나메라가 11.4m, BMW 740i가 12.3m다. 다부진 차체의 718 카이맨이 11.7m다. 길이 약 5.2m의 세단이 달성한 결과라 놀랍다. 즉, 플래그십 세단이라고 운전이 불편하지 않을까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기대 이상 경쾌한 사운드가 실내로 스민다. 정숙성만 강조한 여느 대형 세단과 다르다는 단서다. 바닥 소음과 풍절음은 말끔하게 제압해, 오롯이 호쾌한 엔진 사운드만 즐길 수 있다. 반면, 페달을 살살 어루만지면 가급적 2,000rpm 이하에서 변속을 이어가며 연료를 살뜰히 아낀다. 시속 100㎞ 항속 주행 시 엔진 회전수는 약 1,500rpm 내외.

한국인의 입맛 맞춘 옵션 구성…그러나 단점도 있어


편의장비 구성도 좋다. 가령, 헤드업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파노라마 선루프, 통풍 시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오토홀드 등을 담았다. 압권은 다름 아닌 오디오. 총 34개 스피커로 이룬 보스 파나레이 사운드 시스템이 자리한 까닭이다. 스마트폰으로 재생하는 저품질 음악도 보스 사운드 시스템의 ‘센터 포인트 3’를 통해 12채널 사운드로 변해 현장감 넘친다.

가격대가 비슷한 독일제 세단은 화려한 앰비언트 라이트와 가죽 트림으로 시선을 끌지만, 정작 오디오에서 원가절감 흔적이 엿보인다. 아무리 ‘막귀’라고 할지라도, 최상급 오디오가 주는 풍성한 사운드를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다. 잘 달리고 잘 서는 주행질감 만큼, 프리미엄 세단에 있어 오디오 역시 중요한 요소다. 평범한 라디오 광고도 긴박한 소식으로 빙의한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단점도 있다. CT6는 정차 시 시동을 끄고 켜는 오토 스타트&스탑 시스템과 오토홀드 기능을 갖췄다. 통상 해당 기능 품은 모델은 오토홀드와 맞물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더라도 시동을 끈 상태로 유지한다. 그러나 CT6는 오토홀드만 유지한 채 곧바로 시동을 건다. 따라서 연료를 아끼려면 항상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어야 한다.



또한, 공조장치를 뺀 대부분의 기능 조작은 스마트폰처럼 터치로 한다. 오디오 볼륨 조절과 비상등 점멸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반응속도가 아쉽다. 보기엔 멋스럽지만, 조작 빈도가 높은 기능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남겨놓는 게 좋을 듯하다. 특히 비상등 버튼은 중앙 모니터 오른쪽 상단에 자리했는데, 크기도 작고 멀리 있어 운전 중 누르기 꽤 힘들다.

우리나라 소비자는 ‘상향 대차 성향’이 크다고 한다. 기존 현대 그랜저 등 준대형 세단을 탔던 사람은, 다음 차로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 등 수입차를 꿈꾼다. 물론 손님 북적대는 식당에서 실패할 일 없듯, 이들을 구입해 후회할 일은 없다. 그러나 수입차 타면서 누리고 싶은 희소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모두가 선택하는 무채색 독일차가 싫다면, 또 원치 않은 ‘떼빙’을 즐기기 싫다면, CT6로 또렷한 내 취향을 드러내보는 건 어떨까.

글 강준기 기자

사진 임근재 실장(www.studio-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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