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에쿠스(LZ)

조회수 2019. 1. 1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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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하기 이전부터 현대자동차는 꾸준히 자기만의 고급 승용차를 만들어 왔다. 물론 개중에는 성공적이지 못한 사례도 꽤나 존재했지만 다른 제조사들에 비해 시장의 반응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기념비적인 히트작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그 이름이 이어지고 있는 그랜저(Grandeur)와 ‘초대형 세단’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초대 ‘에쿠스(EQUUS)’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세대 그랜저(통칭 뉴 그랜저)이래로, 그랜저보다 상위급에 위치하는 차를 개발하고자 했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은 그야말로 고급 승용차의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1996년에 그랜저의 상위급에 해당하는 모델인 ‘다이너스티(Dynasty)’를 내놓은 바 있었다. 다이너스티는 뉴 그랜저를 기반으로 보닛과 트렁크리드를 포함한 전/후면부 디자인을 변경하여 길이를 늘리고 N.V.H 보강 및 서스펜션 설정, 편의사양 등을 추가한 모델이었다. 즉, 근본적으로는 뉴 그랜저의 ‘고급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차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해부터 시작되었다. 1997년에는 다이너스티의 체급을 뛰어 넘는 차가 두 대나 연달아 등장했기 때문이다. 상반기에 먼저 등장한 것은 기아자동차의 ‘엔터프라이즈(Enterprise)’였고 하반기에 등장한 신차는 쌍용자동차의 ‘체어맨(Chairman)’이었다. 엔터프라이즈는 뉴 그랜저를 뛰어 넘는 크기와 강력한 마쓰다제 3.6리터 V6 엔진으로 엔진 배기량마저 넘어섰다. 쌍용자동차 체어맨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국내에서 최고의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로 통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을 등에 업고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이 두 차종은 앞선 제원 상 수치를 통해 다이너스티를 양쪽으로 압박했다.


 

물론, 경쟁자들보다 먼저 최고급 세단을 내놓은 이 당시 현대자동차는 그랜저 혹은 다이너스티의 뒤를 이을 최고급 대형 세단을 개발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경향이 크게 변화함에 따라 기존 모델의 후속이 아닌, 이들을 뛰어 넘는 차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게 된 차가 바로, ‘에쿠스’다.


현대자동차와 미쓰비시의 마지막 공동 프로젝트, ‘초대형 세단’

에쿠스의 개발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일본의 미쓰비시자동차(이하 미쓰비시)를 빼 놓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로부터 기술적인 지원을 상당히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차의 공동개발도 함께 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현대자동차의 초대 그랜저다.


미쓰비시가 다른 차도 아닌,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을 현대자동차와 공동개발하게 된 까닭에는 양사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미쓰비시는 일본 내에서 규모가 작은 제조사였고, 그 때문에 고급 세단을 홀로 개발하는 데에는 자금의 부담이 너무 컸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포드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하고 있었던 그라나다가 아닌, 자사만의 고급 세단 모델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에 미쓰비시는 현대자동차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이 결과물이 바로 초대 현대 그랜저다. 그랜저는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임과 동시에, 일본에서는 미쓰비시의 플래그십 세단, ‘데보네어(Debonair)’의 2세대 모델이기도 했다. 그리고 2세대 뉴 그랜저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현대 그랜저는 초대 모델과 2세대 모델 모두 대한민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로까지 자리잡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경우는 현대자동차와는 사정이 달랐다. 미쓰비시 데보네어는 내놓는 족족 실패를 거듭했다. 당시 일본의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전륜구동을 선호하지 않았던 데다, 외관에서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스타일을 고수한 탓에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된 이후 고급 승용차 수요가 줄고 있었고, 독일 등지에서 건너 온 수입차들이 고급 승용차 시장을 거세게 파고 들었다. 이에 미쓰비시 역시 새로운 고급 세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경쟁자의 압박을 물리치고자 했고, 미쓰비시는 거듭된 실패를 만회할 완전히 새로운 차종을 내놓고자 했다. 이에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서로의 손을 잡고 새로운 고급 세단의 개발을 추진한다. 에쿠스의 개발이 드디어 본격화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개발된 완전 신형의 대형 세단은 ‘현대 에쿠스’와 ‘미쓰비시 프라우디아(Proudia)’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나게 되었다. 리무진 모델은 전면부 디자인이 프라우디아와 다르게 만들어졌는데, 이는 미쓰비시가 프라우디아의 리무진 모델을 ‘디그니티(Dignity)’라는 별도 모델로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별도의 모델이 아닌, 에쿠스의 리무진 사양으로 출시되었다.


엔진은 초기에는 다이너스티의 3.5리터 시그마 엔진을 주력으로, 국내 최초의 V형 8기통 엔진인 4.5리터 오메가 V8엔진을 적용했다. 시그마 엔진은 미쓰비시 싸이클론 엔진을 현대자동차가 개량한 것으로, 원본인 싸이클론 엔진에 비해 더 우수한 정숙성을 자랑했다. 1999년 하반기에는 뉴그랜저의 3.0 시그마 엔진을 추가했다.


 

하지만 에쿠스를 상징하는 엔진이자, ‘초대형 세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4.5리터 오메가 V8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메가 엔진은 미쓰비시 8A8형 엔진을 기반으로 하며, 당시 최신 기술로 통했던 가솔린 직접분사 방식(Gasoline Direct Injection, 이하 GDI) 기술을 전격 채용한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280마력/5,000rpm, 최대토크는 42.8kg.m/4,000rpm을 낼 수 있었다. 변속기는 자동 5단 변속기를 사용했다.


오메가 엔진의 생산은 전량 현대자동차에서 전담했는데, 그 이유는 미쓰비시가 처음부터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을 사용하는 엔진으로 개발해 놓고도 정작 자사에는 알루미늄 블록을 생산할 설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미쓰비시가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면서 현대자동차는 이 엔진에 대한 모든 권리를 사들이기에 이른다.


 

이렇게 완성된 현대 에쿠스는 1999년 상반기에 국내 시장에 전격 데뷔했다. 현대자동차는 에쿠스를 론칭하면서 V8 엔진을 탑재한 ‘초대형 세단’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대형 고급 승용차 시장을 공략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 기반 설계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쌍용 체어맨에게는 가장 커다란 위협으로 떠올랐다.


 

에쿠스는 길이 5,120mm, 폭 1,870mm, 높이 1,480mm의 대형 세단으로, 당시에는 가장 큰 차체를 가졌다. 게다가 리무진 버전의 경우에는 5,390mm의 길이를 가져, 실로 거대한 체구를 자랑했다. 여기에 미쓰비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권위적인 외관 디자인, 그리고 정숙한 파워트레인과 부드러운 승차감으로 국내 대형세단 소비자 층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국내에서 차종을 불문하고 압도적인 선호도를 보이고 있었던 전륜구동계 채용과 넓은 실내, 화려한 내부 사양 역시 좋은 평가를 얻은 요인 중 하나였다. 물론, 국내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몸집을 자랑했기에 연비가 상당히 나빴음에도 에쿠스의 판매량은 날로 늘어만 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에쿠스는 출시 초기에 엔진 결함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오메가 엔진이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당시만 해도 GDI 기술은 굉장히 앞선 기술이었고, 그 때문에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미쓰비시가 8A8형 엔진을 개발하면서 복잡한 전자장비를 다량으로 사용했고 그나마도 비표준으로 설계된 부분이 태반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당시 국내에서는 개념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던 고옥탄가 휘발유(이하 고급유)를 사용하도록 한 엔진 설정 때문에 신뢰성은 더 낮아졌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가 프라우디아의 생산을 포기한 이후 8A8형 엔진의 권리를 사들여서 연료공급 방식을 GDI에서 MPI로 바꾸는 대수술을 감행해야만 했다. 이 외에도 제동장치의 성능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1999년에 첫 출시가 이루어진 지 4년을 맞은 2003년, 초대 에쿠스는 한 차례의 변화를 맞게 되었다. 제동장치의 개선을 시작으로, 테일램프와 트렁크리드,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 내부구조 등을 변경했다. 테일램프는 한층 커진 데다, 조명으로 LED램프를 사용했으며, 트렁크리드도 이에 맞게 변화했다. 그리고 번호판이 붙는 위치가 범퍼에서 트렁크리드로 올라갔다. 아울러 파워트레인 보증 기간을 5년/10만km로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2005년도에는 시그마 엔진을 현대자동차가 자체개발한 람다 3.3리터 및 3.8리터 엔진으로 대체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V8 고급 세단으로 등장한 초대 에쿠스는 2008년을 끝으로 생산을 종료하고, 초대 제네시스를 바탕으로 개발된 2세대 에쿠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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