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도전하라! 재규어 I-페이스가 꿈꾸는 미래로

조회수 2019. 1. 21. 13: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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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전기차 시대가 달갑지 않다. 고회전에서 절절 끓는 엔진 사운드를 들을 수 없으니까. 머플러에서 시원하게 콩 볶는 소리도 그림의 떡이다. ‘청각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전기차는 내게 적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오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I-페이스가 내는 소리라면 충분히 즐겁고 황홀했기 때문이다.

글 강준기 기자|사진 재규어, 강준기

포뮬러 원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듯하다. 8기통, 10기통 엔진으로 짜릿하게 달리는 F1 머신은 내게 그 어떤 음악 연주가보다 훌륭했다. 그러나 별별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며 엔진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이제 F1 머신의 사운드는 앙금 없는 찐빵 같다. 설상가상 포뮬러의 미래라고 부르는 포뮬러 E는 ‘윙윙’ 대는 모터 소음으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현대 코나 일렉트릭과 기아 니로 EV 등의 전기차 모두 ‘사운드’하고는 담을 쌓았다. 제 아무리 0→시속 100㎞ 가속이 스포츠카만큼 빠르다고 한들, 속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화끈한 소리를 안 내니 심심할 수밖에. 그러나 오늘 경험한 I-페이스의 목청은 한 마디로 짜릿했다. 맹렬하게 속도를 내며 증폭하는 모터 소음이 기대 이상 흥미진진하다.

일반 내연기관차하고는 다른 ‘묘한’ 비율

먼저 외모 소개부터. 이미지로 봤을 땐 F-페이스처럼 든든한 덩치를 지닌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기대이상 다부지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700×1,895×1,560㎜. F-페이스보다 31㎜ 작고 41㎜ 좁으며 88㎜ 낮다. F-페이스가 생소하다면 현대 싼타페와 비교해볼까? 70㎜ 작고 5㎜ 넓으며 120㎜ 낮다. 즉, SUV라기보단 살짝 키 높인 해치백 같다.

그런데 휠베이스는 2,990㎜로 거의 3m다. F-페이스, 싼타페보다 100㎜ 이상 넉넉하다. 덕분에 I-페이스의 외모를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자동차와는 조금 다른 비율을 뽐낸다. 앞뒤 오버행은 극단적으로 줄였고, 보닛과 펜더를 부풀려 다부진 체격을 만들었다. 네 발엔 20인치 알로이 휠을 끼웠고 도어 패널에 감쪽같이 숨은 손잡이도 평범하지 않다.

비결은 플랫폼. 니로 EV 등이 일반 내연기관차 뼈대에 전기차 전용 부품을 욱여넣었다면, I-페이스는 전기차 전용 골격이다. 그 결과 차체 뱃바닥에 큰 배터리를 깔고 알루미늄 구조로 감쌀 수 있었다. 특히 충돌부위에 쓰는 알루미늄 합금의 강도를 더 높이기 위해, 업계 최초로 알루미늄 단조를 심었다. 비틀림 강성은 36,000Nm/°로 역대 재규어 중 가장 튼튼하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혜택은 실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재규어는 ‘롱 노즈 숏 테크’의 남다른 비율에 집착하느라 실내 공간이 다소 작았다. BMW도 좋은 예다. 그러나 I-페이스는 앞좌석이 좀 더 앞으로 이동했고, 뒷좌석 무릎공간은 890㎜에 달한다. 단, 운전석에 앉으면 생각보다 큰 체격이 와 닿지 않는다. 모든 부위를 운전석 위주로 구성한 까닭이다.

덕분에 여느 SUV엔 없는 묘한 긴장감도 느낄 수 있다. 옆구리를 바짝 옥죄는 시트와 두툼한 스티어링 휠, 스포츠카처럼 바싹 누운 앞 유리가 오롯이 ‘운전재미’를 위해 뭉쳤다. 핵심은 터치 프로 듀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위쪽엔 10.2인치 터치스크린을, 아래쪽엔 5인치 터치스크린을 심었다. 스마트폰처럼 조작할 수 있고, 일단 기능을 떠나 보기에 멋스럽다.

그러나 조작방법은 다소 수고스럽다. 특히 아래쪽 디스플레이로 공조장치를 조절할 수 있는데, 양 끝단에 두 개의 다이얼을 달았다. 바람세기를 조절하려면 다이얼을 당겨야하고, 온도조절은 돌려서, 열선조작은 눌러서 해야 한다. 운전 중 조작하려면 손이 무척 바쁘다. 좀 더 직관적으로 구성하는 게 좋을 듯하다. 단, 버튼식 기어레버 덕분에 수납공간은 많이 챙겼다.

지붕은 유리를 통째로 심었다. 열리진 않는 고정식 파노라믹 글라스다. 로렌지 패턴의 세라믹 소재로 빚어 대낮에도 정수리가 뜨겁지 않다.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짙은 하늘이 아쉬울 따름이다. 또한, 뒷좌석은 필요에 따라 60:40으로 나눠 접을 수 있고 모두 접으면 트렁크 용량이 최대 1,453L까지 늘어난다. 기본용량은 656L이며 보닛에도 27L 공간을 마련했다.

짜릿한 가속 감각, 귀도 즐겁다

흔히 재규어를 영국의 고급차 제조사로 알고 있지만, 모터스포츠에 잔뼈 굵은 회사 중 하나다. 최근엔 포뮬러 E에 참여하고 있다. 2016-2017 시즌부터 참가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당시 재규어는 “포뮬러 E를 통해 전기차 기술을 시험하고, 양산차에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들의 주장처럼, 레이스를 통해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I-페이스에 녹였다.

I-페이스의 심장엔 재규어가 독자 개발한 두 개의 전기 모터가 앞뒤 차축에 자리했다. 그 사이에 넓고 평평한 90㎾h 배터리 팩을 차체 뱃바닥에 깔았다. 이 모터들이 각각 앞바퀴, 뒷바퀴를 굴려 사륜구동으로 빙의한다. 최고출력은 400마력, 최대토크는 71.0㎏‧m이며 0→시속 100㎞ 가속을 4.8초에 해치운다.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는 333㎞로 인증 받았다(국내 기준).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알겠지만, 요즘처럼 추운 날씨엔 배터리가 제 성능을 못 낸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겨울엔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 그래서 재규어는 뒤 차축에 ‘배터리 매니징’ 시스템을 얹었다. 배터리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성능저하를 막는다. 또한, 운전자는 스마트폰 전용 어플리케이션으로 배터리 상태나 충전 시간 등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는 50㎾h 또는 100㎾h 급속 충전기와 7㎾h 가정용 충전기를 통해 충전할 수 있다. 50㎾h 급속 충전기를 쓰면 90분 만에 약 80%까지 충전하며, 100㎾h는 80%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차를 사면 가정용 소켓에 쓸 수 있는 충전 케이블을 준다. 속도는 느리지만, 자는 동안 충전기를 물리면 평균 통근 거리(약 60㎞)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고급스러운 주행질감, 숙성은 필요해

항상 재규어 시승행사에 가면, 동료 기자들의 평가가 5:5로 완벽하게 나눈다. 다른 제조사 모델과는 다른 주행질감을 지닌 까닭이다. 가볍고 예민한 스티어링 휠과 민첩한 앞머리, 코너 바깥쪽으로 꽁무니가 살짝 흐르는 오버스티어가 대표적이다. 이걸 짜릿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반,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람 반이다. 독일차의 든든함을 좋아한다면, 대체로 재규어를 싫어한다.

I-페이스는 예민한 재규어가 싫은 사람도 설득할 수 있을 듯하다. 차체 바닥에 깐 배터리 덕분에 속도를 높일수록 남다른 안정감을 뽐낸다. 앞뒤 무게배분은 50:50으로 칼같이 맞췄다. 서스펜션은 앞 더블위시본, 뒤 인테그랄 링크로 F-타입과 같은 구성이다. 차체 앞머리에 바짝 붙은 바퀴와 맞물려, 운전대를 살짝 비틀어도 코너 안쪽으로 예리하게 찔러 넣을 태세다.

즉, 직선 주로에선 독일차 이상의 안정감을, 코너에선 재규어다운 예민함을 모두 양립시켰다. 특히 배터리 덕분에 무게중심이 내려가, 차체가 기우는 현상도 어지간해선 느낄 수 없다. 시속 105㎞ 이상에선 에어 서스펜션이 차체를 10㎜ 더 낮춰 안정감을 극대화한다. 요철 구간에선 노면 진동을 ‘툭툭’ 삼키며 시종일관 기분 좋은 승차감을 누릴 수 있다.

차체 바닥을 보면 또 다른 힌트가 숨어있다. 머플러 등이 없기 때문에 여느 내연기관차보다 무척 평평하다. 덕분에 공기 와류도 줄였고, 불쾌한 바닥 소음도 말끔하게 제압했다. 고속에서 화끈하게 몰아붙여도, 풍절음과 모터 소리 외에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기존 엔진 차를 평가하는 잣대로 I-페이스를 설명하는 게 꽤 난감할 정도다.

압권은 모터 사운드.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기대 이상 호쾌한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운다. 마치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처럼, 페달 밟을수록 소리의 기승전결이 또렷하다. 이 정도의 짜릿함이라면, 내연기관을 포기할 수 있을 듯하다.

단, 제동 시스템은 때때로 좋은 주행질감을 훼손했다. 가령, 운전자는 에너지 회생 제동 시스템의 강도를 두 가지 중에 고를 수 있다. ‘높음’으로 설정하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강하게 빗장을 건다. 제동 에너지 거둬들여 배터리를 충전하는 원리다. 그러나 선회 중 회생 제동 시스템이 작동하면 주행 궤적이 부풀고, 앞바퀴에 걸리는 구동 토크와 맞물려 언더스티어가 크게 생긴다.

주행모드는 에코와 컴포트, 다이내믹 등 운전자 입맛 따라 버튼으로 누를 수 있다. 그러나 각 모드 별 성향 차이는 크지 않다. 다이내믹 모드에선 모터 사운드를 조금 증폭시키며 댐퍼와 스티어링 휠 답력은 컴포트와 비슷하다. 에어 서스펜션을 물린 만큼, 주행모드에 따른 차이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면 좋을 듯하다. 굽잇길을 좋아하는 재규어라면.

전기차를 운전하다보면 귀가 먹먹한 느낌을 받곤 한다. 시끄러운 엔진과 머플러가 없으니 바람 소리와 타이어 소음만 아득히 들린다. 시속 20㎞ 이하로 달리는 골목길에선 주변 보행자가 자동차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시각장애인이라면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줄 수 있다. 소리에 의존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규어는 시각장애인과 협력해 전기차 청각경고 시스템(Audible Vehicle Alert System, 이후 AVAS)을 개발해 I-페이스에 심었다. AVAS는 라디에이터 그릴 속에 자리해 특정한 소음을 낸다. 단순한 소리보다는 차의 속도와 함께 볼륨을 높인다. 바람과 타이어 소음이 차의 접근을 경고하기에 충분하다고 간주하는 시속 20㎞ 이상에선 작동하지 않는다.

재규어 NVH 엔지니어인 레인 서필드(Lain Suffield)는 “전기차는 전통적인 엔진 소음이 없으므로 맹인이나 시각에 문제가 있는 보행자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모든 도로 사용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AVAS를 개발했다”고 전했다. 약 4년 간 시각장애인 자선단체와 공동 개발했으며, 7월에 유럽 국가들이 시행할 예정인 최소 56dB(데시벨) 규정을 미리 충족시켰다.

단순한 소음 장치 같은데, 개발 기간이 4년이나 필요했다. 그 만큼 까다로웠다. 가령, 최초 테스트 당시 ‘공상 과학 우주’에 가까운 소리를 실험했는데, 보행자와 맹인 안내견은 해당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서 재규어는 “다양한 도시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수많은 사운드를 실험했다”고 전했다.

재규어 I-페이스. 전기차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진 나를, 어느 정도 돌아서게 만들었다. 충전 여건만 갖출 수 있다면 다음 차로 고민해볼 만큼. 물론 아직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는 아니지만, 앞으로 I-페이스가 전기차 대중화 이끌 주역으로 나서길 기대한다. 재규어의 첫 번째 전기차, 첫 번째 스타트는 합격점이었다.

<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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