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대우자동차 칼로스

조회수 2018. 10. 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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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당시 대한민국의 산업계는 97년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출’에 생사를 걸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 산업은 조선업 및 반도체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수출역군으로 활약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업계는 미주지역 외에도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에 힘쓰고 있었으며,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아예 유럽 시장을 노리고 개발한 전략 모델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러한 모델들을 국내 시장에도 선보이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 대우자동차의 ‘칼로스(Kalos)’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차종 중 하나였다.


GM대우의 수출 역군, 원조 ‘아베오(AVEO)’

칼로스는 2001년 5월에 처음 발표되었다. 이 시기는 대우자동차에게 있어서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대우자동차는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매물’로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상태였다. 게다가 칼로스가 발표된 해인 2001년에는 1,700여명에 달하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했고 이에 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하여 일으킨 파업 등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대우자동차가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이하 GM)를 새 주인으로 맞이한 것은 동년 하반기, 그리고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이하 GM대우)로 거듭나게 된 것은 그 다음 해의 일이었다.


 

칼로스의 발표는 2001년에 이루어졌지만 생산은 GM대우로 출범하고 나서인 2002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따라서 정식 출시 또한 2002년 5월부터 이루어졌다. 사실 상 대우자동차가 발표한 마지막 양산차였고, 초도 물량은 대부분 대우자동차의 엠블럼을 달고 출고되었다.


대우자동차 칼로스는 1999년, 프로젝트명 ‘T-200’을 부여 받고 3년여에 걸쳐 개발되었으며, 총 2,2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되었다. 칼로스는 대우자동차가 독자개발한 소형 승용차로, 소형차 라노스(Lanos)를 대체할 후속 차종으로서 개발되었다. 본래 유럽 시장을 위한 별도의 전략모델로서 계획되었지만 대우그룹의 해체, 라노스의 노후화 등으로 인해 라노스를 대체하는 모델로서 개발이 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차명인 칼로스(KALOS)는 ‘아름답다’ 내지는 ‘좋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καλός (kalós)’에서 가져온 것으로, 우아하고 매력적인 차를 의미하는 작명이었다. 스타일링은 라노스, 누비라 등으로 연을 맺어 왔던 이탈디자인에서 맡았다. 칼로스의 디자인은 대우자동차가 2000년 파리 모터쇼에 출품한 칼로스 드림 컨셉트(Kalos Dream Concept)를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컨셉트카는 전면부와 후면부 디자인 일부를 제외하면 양산형 칼로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개발이 진행되어 있었다. 또한 이 컨셉트카를 통해 칼로스의 디자인은 해치백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시 당시 ‘소형 크로스오버’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시장에 등장했다. 칼로스의 ‘크로스오버’ 개념은 승용차와 SUV의 이종교배가 아닌, 승용차와 MPV(Multi Purpose Vehicle)의 이종교배에 더 가까웠다. 이와 같은 컨셉트로 디자인된 요소 중 하나는 지붕이 높은 하이-루프 스타일로, 칼로스의 설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칼로스는 하이-루프 스타일을 취하면서 당시 동급 소형 승용차에 비해 지붕의 높이가 유난히 높았다. 이 덕분에 동급 소형 승용차에 비해 승하차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고 경쟁 모델 대비 넉넉한 헤드룸을 지니고 있었다. 대우자동차 시절 만들어진 광고에서는 두터운 우주복을 입은 우주비행사가 손쉽게 드나들고 차 안에서 가볍게 춤을 추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칼로스의 우수한 승하차 편의성과 넓은 실내 공간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하기도 했다. 또한 ‘원’을 테마로 하는 특유의 인테리어 디자인도 특징이었다.


 
 

칼로스는 4도어 세단형 모델과 5도어 해치백형의 두 가지 형태로 출시되었다. 해치백형 모델은 칼로스V(Kalos V)라는 별도의 차명이 붙었다. 칼로스V는 원형의 해치백 차체를 고스란히 가져와,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보여주었으나, 세단형은 1.5박스에 가까운 해치백형 차체에 억지로 트렁크를 붙여 놓은 모양새로 디자인되어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엔진은 출시 초기에는 1.5리터 E-TECH SOHC 엔진만 존재했다. 변속기는 수동 5단 혹은 자동 4단 변속기 중 고를 수 있었다. 1.5리터 E-TECH SOHC 엔진은 86마력/5,400rpm의 최고출력과 13.4kg.m/3,000rpm의 최대토크를 냈다. 이후, 칼로스V 한정으로 새로 개발한 1.2리터 SOHC 엔진이 추가되어, 선택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혔다. 1.2리터 SOHC 엔진은 71마력/5,400rpm의 최고출력과 10.6kg.m/4,300rpm의 최대토크를 냈다.


칼로스가 등장한 2002년도는 소형차에게 있어서 그리 녹록한 시장이 아니었다. 외환위기가 일어난 97년도만 해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소형차의 점유율은 40%를 넘나드는 수준이었지만 칼로스가 발표된 2001년에는 이미 20%대로 주저 앉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 소형차 시장이 줄어든 이유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자동차 시장에서 일어난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도입 초기 이른 바 ‘싸구려’ 취급을 받으며 홀대 받았던 경차가 ‘저렴한 유지비’와 ‘정책적 혜택’을 무기로 급격하게 성장했고 경기가 호전됨에 따라 소형차보다 상위 차급의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GM대우는 레조의 출시 이래 2년여만에 등장한 신차 칼로스를 판매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전국을 돌며 신차 관람 행사를 열며 칼로스를 알리는 데 힘썼다. 또한 당시 소형차에 적용되지 않았던 사이드 에어백, 원격 시동 기능이 포함된 리모컨 키 등의 사양을 도입하기도 했다.


 
 

2002년 출시된 칼로스는 출시된 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뉴 칼로스’라는 이름과 함께 부분변경을 거쳤다. 뉴 칼로스는 전면부의 디자인이 일부 변경되었다. 변경된 전면부 디자인은 초기형에 비해 한층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칼로스는 소형차 시장의 약세와 더불어, 국내 시장에서는 현대자동차의 클릭과 베르나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칼로스는 내수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경쟁차종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넓은 실내 공간은 어필할 수 있을 만한 요소였으나, 대우계열 차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마티즈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부실한 차체 구조 설계, 1.5리터 SOHC 엔진의 좋지 못한 연비,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디자인 등이 그 이유였다. 특히 구조설계는 후술할 스킨 체인지 모델인 젠트라 및 젠트라X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반면 수출 시장에서는 당대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산 자동차 중 하나였다. 저렴한 가격과 적당한 실용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2004년도에는 연간 20만 대가 넘는 칼로스가 팔려 나갔다. 반면, 이렇게 대량으로 수출된 것과는 다르게, 해외 시장에서의 평가는 상당히 냉혹했다. 특히 부실한 구조설계로 인해 충돌 안전성이 매우 나빴으며 수준 미달의 품질과 연비 또한 단점으로 지목되었다.


 
 

이렇게 칼로스는 출시된 지 3년만인 2005년, ‘젠트라(Gentra)’와 ‘젠트라 X(Gentra X)’라는 후속 모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 젠트라와 젠트라 X는 엄밀히 말하자면 칼로스의 스킨 체인지 모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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