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특별했던차]기아 엔터프라이즈

조회수 2018. 12. 4. 11:19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기아자동차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아자동차에게는 수많은 고난이 따랐다. 한창 사업을 키워가고 있었던 80년대에는 전두환 정권의 ‘자동차공업 통합 조치’라는 이름의 재앙을 만났고 90년대에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기아자동차가 부도를 맞으며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그리고 수년 뒤 현대자동차에 인수 되어 지금의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이 되었으며, 현재는 대중성과 디자인에 역점을 둔 다양한 종류의 차들을 만들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현재 다양한 대중차를 필두로 스팅어 등 색깔이 담긴 차들을 만들고 있다. 현재 기아자동차의 플래그십 대형 세단 K9 역시 기아자동차의 독자적인 색깔이 녹아 들어 있는 차다.


 

그런데 기아자동차는 K9 이전에도 후륜구동 대형 세단을 개발하고 생산했던 전력이 있다. 비록 그 기반은 마쓰다의 것을 가져온 것이었지만 지금보다도 자기만의 색깔이 강했던 당시 기아차답게, 기아자동차가 아니면 시도하지 않았을 독특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 세단은 등장과 동시에 세간의 주목을 끌었지만 그 해 연달아 벌어진 악재들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었으며, 이 차가 단종된 이래로 K9의 등장 이전까지 기아 플래그십 대형 세단의 맥은 사실상 끊기게 된다. 기아차가 가진, 제대로 된 첫 번째 대형 세단이라 할 수 있는 이 차의 이름은 바로 ‘엔터프라이즈’다.


숫자로 그랜저를 압도한 후륜구동 최고급 세단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당시 기아자동차가 생산하고 있었던 고급 세단 포텐샤(Potentia)를 대체하기 위한 후속 차종으로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가 발표된 97년도 당시에는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고급 세단 경쟁에 한창 불이 붙고 있을 때였다. 엔터프라이즈가 출시될 당시 현대자동차는 2세대 그랜저를 바탕으로 한 최고급 세단 다이너스티(Dynasty)를, 대우자동차는 일본 혼다기연공업의 2세대 레전드(KA7)를 라이센스 생산한 대우 아카디아(Arcadia)를 출시한 상태였다.


 

이들 차종은 모두 길이가 5미터에 육박하는 대형 차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다분히 차의 크기에 구애 받는 경향이 컸던 국내 고급 세단 시장의 성향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텐샤는 점점 고급 세단으로서 어필하기가 어려워졌다. 당시 경쟁사들의 고급 세단 차종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포텐샤 역시 개발 당시부터 4,925mm의 길이와 1,725mm의 폭을 가지고 출시되었다. 하지만 경쟁자인 다이너스티는 길이만 4,980mm에 폭은 1,810mm로 더 컸고, 대우 아카디아 역시 4,950mm의 길이와 1,810mm의 폭을 지녀 더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전륜구동 플랫폼의 이점을 살린 넉넉한 실내공간으로 소비자들로 하여금 확실히 ‘대형차’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반면 포텐샤는 이들과 경쟁하기에는 상당한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다. 이는 포텐샤가 마쓰다의 루체(Luce)를 설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포텐샤의 기반이 된 마쓰다 루체는 최후의 루체이기도 한 5세대 모델로, 이미 1986년부터 생산되고 있었던 모델이었다. 마쓰다 루체(Luce)의 체급은 당시의 대형 세단들과 비교하면 훨씬 작았다. 루체의 체급은 대형 세단이라기 보다는 고급 중형, 내지는 준대형 세단에 더 가까웠다.


이러한 태생적인 체급의 차이와 더불어 후륜구동을 사용한다는 점으로 인해 포텐샤는 고급세단이라고 하기에는 실내공간이 경쟁자들에 비해 좁았다.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4.9m 이상의 길이를 확보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기에 1992년에 출시되어 이미 모델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도 대형세단으로서 포텐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서 작용했다.


 

따라서 기아자동차는 향후 고급대형 세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포텐샤보다 더 큰 사이즈와 배기량을 가진 차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프로젝트명 T3를 부여 받아 태어나게 된 차가 바로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다.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본래 1997년 1월 출시 목표로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발 일정이 지연되면서 목표로 했던 1월이 아닌, 3월에서야 출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차명은 초기에는 마젠티스(Magentis) 3600으로 계획되었으나, 이후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로 변경했다. 차명인 엔터프라이즈는 ‘기업’이라는 의미 외에도 ‘모험적인 사업’이나 ‘진취성’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마쓰다의 고급 세단, 센티아(Sentia)의 2세대 모델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마쓰다 센티아는 포텐샤의 설계 기반이 된 루체의 후속 모델로 개발된 세단으로, 더 커진 크기와 더 강력해진 성능을 가진 차였다.


기아자동차는 마쓰다 센티아를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전면부 디자인을 대대적으로 수정하였다. 물론 2세대 센티아는 처음부터 토요타 크라운이나 닛산 세드릭과 같은 고전적인 디자인의 고급 세단들과 정면 대결을 할 것을 상정하고 개발되어 부드럽고 날렵한 초대 센티아에 비해 한층 권위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기아자동차는 현대 그랜저를 연상케 하는 권위적인 스타일의 사각형 헤드램프를 적용하는 한 편, 디테일 곳곳에 독자적인 색을 입혔다. 5개의 슬롯으로 나뉘어지는 세로줄 라디에이터 그릴은 한국의 전통적인 창호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얻었고 전용의 크롬 도금 알로이 휠은 모란당초 무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고급 승용차의 상징과도 같았던 후드 탑 엠블럼도 빼놓지 않았다. 후드 탑 엠블럼은 엔터프라이즈의 두문자 ‘E’와 봉황의 날개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엔터프라이즈는 국내 완성차 업계 최초로 승용 세단에 프레임리스 도어가 적용된 사례다. 이는 프레임리스 도어로 유명한 그랜저XG보다 더 빠른 것이었다.


엔터프라이즈는 여러모로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엔터프라이즈는 국내 승용차 최초로 전장 5,000mm를 돌파했다. 배기량 또한 국내 최초로 3.6리터급 엔진을 채용하여 다이너스티의 3.5리터를 넘어선 최대의 배기량을 자랑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엔터프라이즈의 3.6리터 엔진은 배기량만 큰 것이 아니라 성능도 우수했다. 엔터프라이즈의 3.6리터 V6 가솔린 엔진은 22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내며 대형 세단인 엔터프라이즈를 230km/h의 속도로 내몰 수 있었다.


엔터프라이즈는 당시로서는 가장 거대한 크기와 더불어 주행 성능도 뛰어났지만 고급 세단으로서의 편의성과 호화로움 또한 출실히 갖추고 있었다. 속도감응형 파워 스티어링은 물론 스티어링 휠 틸팅 기능, ECM 룸미러, 전좌석 파워시트와 VIP석 이지 엑세스 기능, 오디오 등을 제어할 수 있는 다기능 암레스트 등이 갖춰져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사양에 따라 VIP석 전용의 마사지 기능, 공기청정기, 냉장고, AV시스템 등의 초호화 사양을 갖추고 있었다. 최고급 사양인 3.6 CEO 모델에는 파인향을 첨가한 전연가죽시트가 적용되었다.


안전사양으로는 ABS를 비롯하여 듀얼 에어백, 자동 해제식 풋브레이크 등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었고, 사양에 따라 앞뒤 장애물을 감지하는 코너 센서 등이 갖춰져 있었다. 여기에 전자제어식 서스펜션까지 탑재되어 최고급 세단으로서의 안전과 성능을 두루 갖췄다.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출시 당시에는 국산차 최대의 크기와 최고의 호화로움을 갖춘 최고급 세단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아자동차의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기아자동차의 부도, 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 그리고 대한민국을 강타한 ‘97년 외환위기’라는 세 가지 악재였다.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반에 금융 위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1997년 한 해 동안 한보그룹을 필두로 한 수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기아자동차가 속한 기아그룹 역시 그렇게 무너진 대기업 중 하나였다. 기아그룹이 경영악화로 부도를 맞고 무너진 것은 1997년 7월의 일이었다. 기아자동차의 부도는 성공의 상징이 되어야 할 대형 세단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10월,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출시된 지 반년을 겨우 지난 무렵부터 또 하나의 강대한 경쟁자와 직면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쌍용자동차의 체어맨이었다. 쌍용 체어맨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최고의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력이 담겼다는 것을 적극 이용하여 국내 소비자들의 환심을 샀다. 세련되고 우아한 독일 고급 세단의 스타일로 빚어지고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력까지 융합된 체어맨은 대번에 시장의 주목을 끌어 모았다. 여기에 그 다음달에는 6.25 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國難)으로 기록된 1997년 외환위기가 비로소 현실로 다가오면서 엔터프라이즈의 앞길은 더 어두워져 갔다.


 

하지만 이러한 악재 속에서도 엔터프라이즈는 꿋꿋이 기아차의 플래그십 세단으로 적게 나마 판매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1999년, 체어맨에 이어 또 다른 경쟁자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바로 에쿠스. ‘초대형세단’을 표방하며 나타난 현대자동차의 야심작이었다. 강대한 경쟁자의 연이은 등장으로 인해 엔터프라이즈는 시장에서 이미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


2001년에는 드디어 엔터프라이즈에도 상품성을 개선한 마이너 체인지 모델이 출시되었다. 이 당시 엔터프라이즈는 봉황 모티브의 엠블럼 대신 ‘K’자를 형상화한 기아의 신규 원형 엠블럼을 비롯하여 외관 디자인 일부와 실내 일부를 개수하여 세련미를 강조했다. 하지만 ‘벤츠기술’을 등에 업은 쌍용 체어맨과 ‘절치부심’으로 등장한 에쿠스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엔터프라이즈의 파워트레인은 2000년대 들어 새롭게 제정된 배기가스 규제를 통과하기 어려웠다. 모기업의 부도와 강력한 경쟁자들의 연이은 등장으로 인해 급속도로 힘이 빠져버린 기아자동차의 기함 엔터프라이즈는 출시 후 5년차가 되는 2002년에 단종을 맞게 된다. 그리고 2012년 1세대 K9의 등장 이전까지 10년동안 기아자동차의 플래그십 럭셔리 세단의 자리는 전륜구동 기반의 오피러스가 담당하게 된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