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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현대 그랜저 XG

조회수 2018. 11. 14. 14: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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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차와 대형차의 사이에 놓이는 이른 바 , ‘준대형차 세그먼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SUV와 함께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는 세그먼트다 . ‘중형차보다 더 고급스럽고 대형차보다 덜 부담스러운 준대형차는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 층을 중심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 특히 현대자동차의 그랜저는 2017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내내 신차판매 1위를 기록하며 12만대를 훌쩍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2018년의 끝자락에 다가서고 있는 현재도 판매량 순위권을 사수하고 있을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



 

그랜저는 1986년 처음 등장했을 때 , 그리고 에쿠스의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자동차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대형 세단이었다 . 하지만 지금은 준대형차 라는 포지션에 놓여 있다 . 그렇다면 그랜저는 언제부터 대형 세단이 아닌 , 준대형이라는 포지션으로 내려 오게 되었을까 ?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현대자동차가 에쿠스를 개발 중이었던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국내 자동차 시장은 90년대까지만 해도 , 세단형 승용차들 , 그 중에서도 중형급에 해당하는 승용차들이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 이 당시 현대차는 초대 그랜저에 이어 내놓은 2세대 쏘나타 (Y2)를 통해 중형 세단 시장의 주도권을 경쟁사인 대우자동차로부터 완전히 빼앗아 오는 데 성공했다 .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이러한 가운데에도 고민이 하나 있었다 . 그것은 바로 중형 세단인 쏘나타와 최고급 대형 세단인 그랜저 사이의 갭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 그 때문에 현대차는 이 사이를 메워줄 만한 모델을 원하고 있었다 . 반면 경쟁사인 대우자동차의 경우에는 시장의 주도권은 빼앗겼을지언정 , 상당한 수준으로 세분화된 중형 세단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었다 . 이는 쏘나타나 그랜저가 커버하지 못하는 중형세단과 대형세단 사이 의 자리를 얼마든지 파고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와 진배 없었다 .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이 사이를 메울 수 있는 고급형 중형 세단에 대해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바로 스텔라의 고급형으로 등장했던 초대 쏘나타(Y1)였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금 고급형 중형 세단의 개발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에 따라 태어난 차가 바로 1995년 등장한 마르샤(Marcia)’였다.


 

하지만 마르샤는 쏘나타와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 당초 의도했던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 가 아닌 , 단지 비싼 쏘나타 로 시장에서 인식되고 만 것이다 . 이는 처음부터 비싼 스텔라 로 인식되어 실패를 맛 봐야 했던 초대 쏘나타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이었다 . 또한 ‘배기량은 작고 차체는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유달리 강했던 90년대 당시 중형급 차체에 대형급 엔진을 실은 마르샤는 이에 완벽히 역행하는 차종이기도 했다 . 게다가 1997년 외환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도통 실적으로 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마르샤는 곧바로 정리 대상이 되었고 출시 3년도 안되어 단종의 칼을 맞게 된다 .


또한 이 시기 , 현대자동차 내에서 사장될 뻔한 브랜드가 하나 있었다 . 바로 그랜저 였다 . 90년대 후반 , 현대자동차는 1995년에 마르샤를 내놓은 이래 그랜저 브랜드를 점진적으로 폐기할 예정이었다고 전해진다 . 1996년에는 그랜저의 상위 모델인 다이너스티를 내놓으며 그랜저 (2세대 )를 한 단계 아래로 강등시켰고 1998년 등장한 에쿠스로 인해 차급이 또 한 단계 내려가게 되었다 . 이와 같은 행보는 대놓고 그랜저 브랜드를 폐기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


하지만 마르샤가 실패함에 따라 , 현대자동차는 큰 고민을 안게 되었다 . 그 고민이란 마르샤의 후속 모델로 개발하고 있었던 프로젝트명 ‘XG’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 그리고는 자신들이 역사의 뒤편으로 보내려 했던 브랜드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 그것이 바로 그랜저 였다 .


작아진 그랜저 , 그랜저의 터닝 포인트가 되다<o>

현대자동차는 에쿠스 , 다이너스티 등을 통해 그랜저라는 이름이 갖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끌어 내리려 했다 . 그렇지만 자신들의 전략으로 인해 오갈 곳이 없어져 버린 그랜저라는 이름에 재차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랜저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 대한민국에서 이미 그랜저는 고급 승용차를 상징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에 현대자동차는 고급 중형세단 이라는 기치 하에 보무도 당당히 등장했던 마르샤가 시장에서 실패한 이후 , 현대자동차는 이미 실패한 브랜드인 마르샤라는 이름 대신 그랜저의 이름을 프로젝트명 XG에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 이렇게 등장하게 된 차가 바로 그랜저 XG’. <o>



 

 

그랜저 XG는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개발했던 초대 및 2대 그랜저와는 달리 , 현대자동차가 처음부터 독자적인 고급 승용차로서 개발하고 있었다 . 개발 과정에서 미쓰비시의 고급 중형 세단을 표방하고 있었던 디아망떼 (Diamante)’의 영향을 받았던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 디자인부터 섀시 , 그리고 엔진까지 현대자동차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을 사용한 명실상부한 독자 모델이었다 . 그리고 처절하게 실패한 마르샤를 반면교사로 삼아 , 외관 , 실내 , 파워트레인에 이르기까지 쏘나타와 확실하게 차별화되도록 만들어졌다 . 특히 차체 크기를 쏘나타보다 확실하게 키우고 엔진 라인업와 편의사양 역시 쏘나타와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도록 만들어졌다 .


그랜저 XG의 디자인은 당대 중 ~대형급 세단 중에서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상당히 선진적인 시도들이 돋보였다 . 동급 최초이자 유일한 프레임리스 (Frameless) 도어가 그 중 하나였다 . 창문을 지지하는 별도의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 이 디자인은 그랜저 XG의 깔끔한 측면 디자인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했다 . 이는 기아자동차의 기함 엔터프라이즈 (Enterprise)가 먼저 시도한 것이기는 하지만 , 엔터프라이즈는 기아자동차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마쓰다의 대형 세단 센티아 (Centia)의 면허생산판에 불과한 모델이었기 때문에 국내 독자개발 모델 중에서는 그랜저 XG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


그랜저 XG의 프레임리스 도어는 신차 개발의 모티브가 된 미쓰비시 디아망떼 등 , 90년대의 일본 내수용 고급 세단들에서 종종 나타나던 통칭 하드톱 의 형태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 그 외의 특징으로는 수직형 테일램프와 고급 승용차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시도된 블랙 베젤 헤드램프 ,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감각을 전달하는 매끈한 차체 형상 등이 돋보였다 .



 

 

그랜저 XG의 외관 디자인은 2002년과 2004년에 각각 한 차례씩 두 번의 변화를 거쳤다 . 2002년에 등장한 뉴 그랜저 XG는 클리어 타입의 헤드램프와 엘란트라의 것을 닮은 L자형 테일램프가 특징이었다 . 하지만 이 디자인이 미국 시장에서 거부당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 2004년에는 테일램프 디자인을 수정하며 또 한차례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치게 되었다 .



 

엔진은 현대자동차가 독자 개발한 델타 엔진을 주력으로 삼았다 . 델타 엔진은 쏘나타부터 그랜저 XG에 탑재할 목적으로 개발된 V6 엔진으로 현대자동차 독자개발 엔진 중 최초로 배기량 2리터를 초과하는 엔진이기도 하다 . 국내 자체개발 엔진 최초로 적용한 고압 주조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을 비롯하여 오일 팬 등 상당수의 부품을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하여 상대적으로 가벼운 건조중량을 자랑했다 . 그랜저 XG에 사용된 델타 엔진은 2.0리터 사양과 2.5리터 사양 , 그리고 LPG 버전 한정으로 2.7리터 사양이 사용되었다 . 2.0리터 사양은 137마력 /6,000rpm의 최고출력과 18.0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 2.5리터 사양은 180마력 /6,000rpm의 최고출력과 23.4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냈다 . 2.7 LPG 엔진은 144마력 /6,000rpm의 최고출력과 23.7kg.m/4,000rpm의 최대토크를 낼 수 있었다 . 또한 최고급 트림에 한해 미쓰비시의 것을 라이센스 생산한 시그마 3.0 V6 엔진도 사용했다 .



 

비록 현대 일가 내에서 지위가 많이 내려오기는 했지만 , 그랜저 XG는 현대자동차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고급 세단 중 하나이기도 하다 . 포지셔닝에 실패한 초대 쏘나타나 마르샤와는 달리 , 하위 모델과 상위 모델들 간의 차별화에 성공했고 판매 간섭 또한 적어서 단종되는 2005년까지 총 30여만대가 팔려 나갔다 . 초대 쏘나타와 마르샤의 실패를 확실하게 거울 삼은 데다 그랜저의 이름값이 톡톡히 제 몫을 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



 

그랜저 XG그랜저 라는 브랜드의 방향성을 본격적으로 바꿔 준 전환점이 되었다 . 과거의 그랜저가 제조사를 대표하는 기함이자 , 상류층을 위한 쇼퍼 드리븐 지향의 최고급 대형 세단이었다면 신세대인 그랜저 XG 이후의 그랜저들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등을 위한 오너 드리븐 지향의 고급 중형 세단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어느덧 6세대 (IG)까지 그 이름을 잇고 있는 그랜저는 현재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이는 현대자동차가 그랜저의 상위급 모델이랍시고 내놓은 아슬란 (Aslan)이 실패하여 퇴장하고 제네시스 브랜드의 론칭에 따라 기존 에쿠스의 자리를 EQ900이 승계함에 따른 것이다 . 그랜저 XG를 통해 정립된 오너 드라이브 고급 세단의 지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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