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냉정 사이②]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vs 포르쉐 파나메라

조회수 2018. 12. 20. 10: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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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와 포르쉐는 국적과 역사, 성향마저 뼛속까지 서로 다른 맞수다. 이 두 브랜드의 대표 차종을 8명의 남녀 필자가 짝을 이뤄 네 편의 에세이 형태로 소개한다. 남성은 마세라티의 열정, 여성은 포르쉐의 냉정에 초점을 맞춰 감상을 풀어낸다. 오늘은 두 번째 편으로,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와 포르쉐 파나메라의 상반된 매력을 다룬다. 아주 주관적으로.

포세이돈을 삼킨 청상아리

글 김성래(BBC 톱기어 한국판 에디터)|사진 마세라티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빌딩 숲을 유영하는 상어인들 도시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이빨에 물린 트라이던트(삼지창)는 시리도록 선연한데 혼탁한 각막으로는 그 빛을 차마 담지 못한다. 바다의 신을 집어삼킨 미물, 콰트로포르테의 영험함은 알아봐주는 이가 없어도 퇴색하지 않는다. 가치를 발견한 이에게는 되레 호젓한 낭만이다. 무심한 도시 군중 속에서 신화의 세계에 발을 담그는 일은 선택된 이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니까. 

숫제 올라탈 필요도 없다. 리모컨 키만 쥐어도 충분하다. 조약돌처럼 차갑고 무겁고 뿌듯한 감촉을 좇아 굽어보면 손 안에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번뜩인다. 한 세기를 빼곡히 채운 마세라티 상징은 신화처럼 끝없는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가격표에 아홉 자리 숫자가 박힌 물건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은 풍족한 통장 잔고가 아니라 은유적 가치를 헤아리는 감수성인지도 모른다.

포악하되 관능적인, 괴이한 듯 기품 넘치는 생김새는 미묘한 영역에서 시선을 압도한다. 한껏 내려앉은 코, 잔뜩 찢어진 눈, 있는 대로 벌린 입은 포식자의 잔혹성을 암시한다. 길고 매끈한 방추형 몸매, 세 줄기 에어브리더로 형상화한 아가미, 카람빗처럼 날 세운 이빨은 포악한 성미를 피 냄새 맡은 청상아리 이미지로 구체화한다. 

콰트로포르테라는 이름을 사전에서 뒤적이면 혀끝에 감도는 기름진 감촉과 상관없는 무미건조한 단어가 도드라진다. 반 백 년 전 마세라티에게는 ‘문(Porte)’이 ‘넷(Quattro)’ 달린 차를 만드는 일이 더없이 이채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고유명사로 무르익은 콰트로포르테는 이제 문 네 짝보다 그 안에 담은 가치로 평가 받는다.

고즈넉한 실내공간은 값비싼 소재로 꾸몄다. 가죽이 품은 촉촉한 온기와 알루미늄에 서린 서슬 퍼런 냉기를 더하면 어째서인지 36.5℃쯤이다. 다부진 카본과 힘찬 바늘땀은 타고난 감과 결로 풍요로운 인테리어에 힘을 싣는다. 대체로 참신함보다는 풍성함으로, 시각보다는 촉각을 집요하게 자극한다. 왕관처럼 살포시 탑승자 머리에 포개지는 헤드레스트 엠블럼 자수는 만족하는 이에게나 불평하는 자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호사다. 

왼손 검지로 시동 버튼을 누르면 포식자의 심장에 혈류가 들이찬다. 검은 피가 성난 불길로 폭발한다. 날숨이 성대를 울려 그윽한 바리톤 아리아를 시작한다. 운전자는 어느새 연주자가 된다. 굳이 성량을 뽐낼 필요는 없다. 가는 숨결 한 줄기에도 열정과 관능이 짙게 뱄다. 풍부한 울림과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반경 100m 이내의 모든 생물을 매료한다. 

가속페달을 짓이기면 망설임 없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배기 파이프의 바이패스 플랩이 열린다. 그러면 날숨이 최단거리를 달려 성대를 두드린다. 칼날처럼 서늘한 금속 패들시프트를 오른손 중지로 튕기는 순간의 결연함. 끊어질 듯 팽팽하던 선율이 짐짓 누그러졌다가 탄성적으로 치솟을 때의 율동감. 그리고 여덟 번의 반복. 오른발에 힘을 풀지 않는 한 끝없이 새로운 절정으로 질주할 태세다.

자동차를 숫자와 장비로 평가하기는 쉽다. 정작 어려운 부분은 수치화할 수 없는 감각이다. GTS의 V8 트윈터보 엔진이 내는 530마력이나 0.15초 만에 앞뒤 구동력을 변주하는 S Q4의 네 바퀴 굴림 시스템만으로는 콰트로포르테의 풍요로운 주행성을 헤아리기 부족하다. 콰트로포르테는 생동하는 감각으로 운전자를 온전히 사로잡는다.

쿠페 실루엣으로 다듬은 완연한 세단이라면, 슈퍼카 심장을 품은 프레스티지 카라면, 포악하고도 정교한 퍼포먼스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그 수많은 아이러니와 하모니를 한 데 포개면 그 자체로 콰트로포르테일 터다. 나무가 일백하고도 네 바퀴의 나이테를 그리는 동안, 마세라티는 헤리티지를 켜켜이 쌓아 무한한 스펙트럼을 낳았다.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어느덧 익숙해서다. 하지만 콰트로포르테의 영험함은 알아봐주는 이가 없어도 퇴색하지 않는다. 외계인을 고문해 개발한 차가 아니라서, 한 세기 동안 인간이 쌓아 올린 금자탑이라서, 그 가치는 더 무겁다. 

트로피 500개를 들어 올렸던 뜨거운 모터스포츠 정신은 트라이던트 엠블럼 안에 고스란히 남았다. 콰트로포르테는 마세라티다. 언제나 특별하고 결코 주류에 편승하지 않으며 항상 남과 과감하게 다르기를 원하는 이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다.

시동을 걸고 끄는 건 나였다

글 김송은(모터리언 기자)|사진 포르쉐 

나는 내성적이기도 하고, 외향적이기도 하다. 어떤 단어로도 나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애매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흔히 통용하는 단어로 나를 쉽게 설명하려 하지 말라. 나는 나로, 내가 설명한다. 시간의 파도가 생각의 모래성을 허물기까지 기다렸다. 비로소 나는 파나메라의 존재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으려나. 

포르쉐 파나메라를 처음 만난 날, 된바람이 불었다. 눈앞에 선 파나메라는 2세대 신형이다. 파나메라는 포르쉐 집안에선 럭셔리 세단일 수 있지만, 외부의 시선으론 반론의 여지 없는 스포츠카다. 흔히 차체 길이 5m, 너비 3m 이상을 대형세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파나메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5,049㎜, 휠베이스는 2,950㎜다.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다. 그 사이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도 한국 땅을 밟았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대체로 가솔린 모델보다 비싸다. 그런데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는 ‘4S’ 모델보다 1,000만 원 정도 저렴하다. 이렇게 내 안의 온갖 줄자를 꺼내들곤 이 차 앞에서 갸우뚱거리고만 있었다.

가을이 흘러갔다. “내가 꿈꾸던 차를 찾을 수 없어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페리 포르쉐의 말을 떠올린다. 그가 꿈꾸던 차는 무엇이었을까. 1948년에 그가 한 생각을 다 헤아릴 순 없다. 하지만 70년이 흐른 오늘, 그의 꿈을 더듬어본다. 

페라리에게 사람은 ‘도구’다. 분명히 내겐 그랬다. 시동을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페라리가 나를 끌고 가는지, 내가 페라리를 운전하는지 혼란스러웠다. 페라리의 GT 카 중 가장 강력한 ‘812 슈퍼페스트’는 물론이고, ‘GTC4 루쏘 T’에서조차 나는 페라리를 시중드는 수동적 존재로 느꼈다.  

그런데 포르쉐 박스터, 911 그리고 파나메라에서 내릴 땐 차가 내게 꽤 어울려보였다. 내 수준만큼 떳떳이 운전을 즐긴 덕분이다. 시동을 걸고 끄는 건 나였다. 나의 이런 마음이 페리 포르쉐의 꿈이지 않았을까.

그 꿈은 해를 거듭할수록 구체화되고 있다. 1세대 파나메라가 데뷔한 2009년, 포르쉐 팬들은 시끄러웠다. “카이엔까진 그렇다 쳐도 왜 세단까지 만들어야하냐?”며 물었다. 포르쉐는 고객을 위한 세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누군가는 “구차한 변명”이라며 아쉬워했고, 다른 이는 “이게 바로 포르쉐의 자신감”이라며 응원했다. 

섀시부터 디자인까지 모조리 바꾼 2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포르쉐를 지켜보던 이들은 조용해졌다. 폭스바겐 그룹은 뒷바퀴 굴림 기반 스포츠카와 스포츠세단에 공통적으로 넣을 MSB 플랫폼을 만들었고, 보란 듯이 파나메라에 가장 먼저 적용했다. 운동성능은 말해 뭐하나. 1세대의 흐리멍덩한 윤곽의 헤드램프도 온데간데없어졌다. 몸매는 911을 닮아 아무도 시비 걸지 못했다.

파나메라를 설명할 요소 중 스포츠카와 스포츠세단이란 장르는 그저 거드는 역할에 머문다. 포르쉐는 뒷좌석 승객도 소외감 느끼지 않고 함께 재미에 동참할 수 있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2세대 파나메라를 타본 이라면 포르쉐의 행보와 지혜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그런데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생기고, 그 단어가 새로운 세상의 기준이 되는 존재. 그렇지만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바로 포르쉐 파나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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