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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볼보 크로스 컨트리, 가장 우아한 모험가

조회수 2017. 11. 28. 13: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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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크로스 컨트리는 20년 동안 갈고 닦은 볼보 크로스오버의 정점에 선 모델이다. 이전 어느 세대보다 감각적인 스타일링과 쾌적한 거주성, 뚝심 있는 파워트레인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도심 주행은 물론 장거리 여행이나 과감한 오프로드에서도 유감없이 탁월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하나의 그릇에 여러 가치를 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샐러드 볼에 너무 많은 재료를 담다보면 영 맛이 없는 경우가 있다. 식감이나 풍미, 드레싱과의 궁합까지 생각해야만 완벽한 요리로 탄생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라서 한 대의 차에 여러 세그먼트의 장점을 섞는 것은 노련한 감각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보는 매우 뛰어난 요리사다. 1997년 최초의 크로스오버 왜건 V70 XC를 세상에 선보였다. 지금은 볼보 SUV의 이니셜이 된 ‘XC’는 원래 ‘크로스 컨트리’의 약자였다. 세단같은 주행 감각에 왜건의 넓은 공간, SUV의 높은 지상고를 더한, 말 그대로 모듬 샐러드 같은 차다. V70의 후속이 XC70, 그리고 그 후속이 바로 V90 왜건에 기반을 둔 신형 크로스 컨트리다.

볼보가 이런 차를 만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거친 자연 환경 때문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겨울이 길고 피요르 지형의 험준한 산지가 많다. 해빙기에는 꽁꽁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비포장 도로들이 모두 진창으로 변한다. 자연히 왜건형 승용차를 타면서도 가벼운 임도 주행이 가능한 차를 만들게 됐다.

크로스 컨트리는 이런 까다로운 주행환경을 철저히 고려해 설계됐다. V90 에스테이트 대비 최저 지상고가 무려 65mm나 높아진 210mm나 된다. 경쟁사 SUV들과 같거나 더 높은 수준이다. 당장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높은 지상고가 새삼 와 닿는다. 발 밑 높이가 넉넉하니 자갈길 정도는 불안감 없이 뛰어들 수 있겠다.

전체적인 스타일링은 앞서 출시된 XC90·S90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필요한 디테일을 억제하고 매끈하게 뻗은 라인이 인상적이다. 전륜기반 4륜구동 구조지만 앞 휠아치와 A-필러 사이의 거리를 늘려 후륜구동 같은 비례감을 연출한 점이 특히 매력적. 왜건형 차체이므로 세단인 S90에 비하면 무게중심이 뒤쪽으로 많이 쏠려 있다. 전장은 이전 세대보다 100mm나 늘어난 반면 전고는 60mm 낮아져 날렵한 비례감을 완성한다.

앞범퍼 하단에는 스키드 플레이트를 덧대는 한편 범퍼 모서리부터 휠 아치까지 검정색 무광 플라스틱으로 마감해 험지 주행 시 스크래치의 우려를 줄이고 남성미를 더했다. 큰 디자인 변경 없이도 S90보다 훨씬 상남자 냄새가 난다. 하지만 범퍼의 절반 이상을 무광 플라스틱으로 덧댄 선대 XC70에 비하자면 세련미를 강조해 훨씬 고급스럽다.

뒷모습도 이전보다 감각적이다. 볼보 왜건의 전통적인 세로형 테일램프는 끝을 꺾어 테일게이트로 집어넣으면서 포인트를 줬다. 깊게 주름 잡힌 테일게이트 부분의 디테일은 일견 BMW의 실루엣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밑 범퍼에는 과감하게 ‘CROSS COUNTRY’를 음각으로 새겨 오프로더 감성을 자극한다.

오프로드 DNA가 흘러 넘치는 외모와 달리 인테리어는 깔끔한 응접실처럼 꾸며졌다. 이런 차로 비포장길을 달리는 것이 어색할 정도다. 실내 디자인은 세단 S90과 거의 똑같다. XC90·S90의 트림이 모멘텀과 인스크립션으로 나눠지듯 크로스 컨트리는 일반 트림과 프로(Pro) 트림으로 나뉜다. 프로 트림에는 인스크립션과 마찬가지로 나파 가죽 시트가 적용되고 바워즈 & 윌킨스 오디오 시스템도 탑재된다.

이미 형제 모델들을 통해 익숙해진 차세대 볼보 인테리어는 보기에 아름답고 고급스러울 뿐더러 사용하기도 편리하다. 손이 닿는 모든 부위의 마감이 깔끔하고 차세대 센서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두어 번의 터치로 대부분의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테슬라 모델 S 이후로 태블릿형 디스플레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볼보 센서스가 가장 직관적이고 터치 감도도 뛰어나다.

2열 레그룸은 S90과 완전 같지만 길게 뻗은 루프라인 덕에 헤드룸은 좀 더 여유롭다. 키 180cm에 앉은키가 큰 필자에게도 넉넉하다. 프로 트림은 2열 좌우 독립 공조 시스템까지 탑재되니 뒷좌석에 손님을 모시기에도 민망하지 않다. 왜건은 짐차라는 선입견은 접어두자. 이 차는 명실상부한 플래그십 크로스오버다. 실내 거주성은 경쟁 E-세그먼트 세단들과 대등하다.

어짜피 탑승 공간의 설계는 S90과 비슷하니 관심이 가는 것은 적재공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차체는 XC70보다 커졌지만 트렁크 용량은 소폭 줄어들었다. 스타일을 위해 D-필러를 눕힌 까닭이다. 기본 용량은 560L, 2열 좌석을 모두 접으면 1526L다. 부족함은 없지만 전장 5m에 육박하는 대형 왜건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넉넉한 용량은 아니다.

대신 전장이 긴 만큼 적재공간이 매우 깊다. 2열을 접으면 평평한 공간의 길이가 2m에 육박한다. 오토 캠핑을 떠날 때 침낭을 깔고 잠을 청하기에도 충분하다. 레저를 즐긴다면 긴 서핑보드나 스키같은 짐을 싣기 좋다. 제원 이상으로 실용도가 우수하다.

짐도 싣고 사람도 탔다면 이제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국내에 투입된 파워트레인은 D5 AWD 한 종류. 연내 D4 등 하위 모델도 추가될 예정이다.

2.0L 직렬 4기통 디젤 엔진과 8속 아이신 자동변속기가 조합된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235마력, 최대토크 49.0kg.m을 발휘한다. 4륜구동에 힘입어 0-100km/h 가속은 7.5초면 끝난다. 몸집을 생각하면 제법 기민한 편.

XC90·S90과 마찬가지로 크로스 컨트리의 D5 엔진에는 파워 펄스 시스템이 탑재됐다. 파워 펄스 시스템은 압축 공기를 저장했다가 터보 래그가 발생하는 저회전 영역에서 터빈에 압축 공기를 분사, 스풀업을 강제로 앞당기는 기능이다. 그 결과 출력은 10마력, 토크는 1.1kg.m 높아졌다. 물론 숫자보다 중요한 건 저회전에서 터보 래그를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점.

차를 움직여 본다. 매끄럽게 굴러가는 느낌이 세단이나 진배없다. 지상고를 한껏 높였음에도 껑충한 느낌은 받을 수 없다. 다리를 쭉 펴고 앉는 시트 포지션이 세단 그대로인 까닭이다. 세단을 타다가 곧장 옮겨 타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XC90보다는 S90에 가까운 주행 감각이지만 시야가 조금 더 넓고 서스펜션도 한결 여유롭다. 댐핑 스트로크가 세단보다 길고 타이어 편평비가 높아 요철을 부드럽게 걸러준다. 잔 진동은 흘려보내지만 노면의 움직임은 확실히 전달되는 세팅이 퍽 고급스럽다. 대신 세단보다 큰 롤링은 감수해야 한다.

시종일관 지치지 않는 파워트레인은 와인딩 로드에서도 경쾌하게 차를 밀어준다. 긴 휠베이스와 4륜구동 탓에 짜릿함은 없지만 가벼운 엔진 덕에 돌아나가는 맛은 깔끔하다. 언더스티어나 불안정한 오버스티어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크로스 컨트리의 진가는 역시 오프로드에서 확인해야 한다. 구매 추이를 보면 이런 크로스오버 자동차 구매자들이 되려 SUV 구매자들보다 오프로드 주행 비중이 높다. 굳이 세단이나 왜건을 구입하지 않고 지상고 높은 모델을 구입한다는 것 자체가 실제 험지 주행을 염두에 둔다는 뜻.

크로스 컨트리는 차고 조절식 에어 서스펜션이나 4WD 락 같은 특별한 기능을 갖추진 않았다. 오프로드 주행 모드와 경사로 감속 주행장치(HDC) 정도가 오프로드를 위한 장비들. 험준한 정글이나 사막보다는 자갈밭이나 임도 정도를 달리기에 적합하다.

시승 코스에는 크로스 컨트리에게 딱 어울리는 비포장 도로 주행이 포함됐다. 속도를 줄이고 오프로드 모드를 선택한 뒤 흙길에 들어섰다. 오프로드 모드에서는 락업 클러치 작동을 늦춰 부드럽게 구동력을 전달한다. 덕분에 슬립이 일어나지 않고 어떤 길이든 내달릴 수 있다.

이따금 발목 깊이의 구덩이나 돌부리가 나타났지만 큰 스트레스 없이 이를 걸러낸다. 넓은 공터에서 일부러 조금 거칠게 몰아붙여 봐도 AWD 시스템이 이내 자세를 잡아준다. 미끄러운 진흙 밭이나 눈이 살짝 쌓인 길에서도 불안하지 않겠다. 럭셔리 세단 급의 안락함과 크로스오버 특유의 거침없음이 공존하는 주행감각은 흔치 않다.

크로스 컨트리는 맛있게 버무려진 일품요리다. S90의 안락함과 V90의 실용성, XC90의 험지주파능력을 한 데 모은 볼보 90 라인업의 샘플러같은 느낌이다. 평소에는 비즈니스 세단처럼 타고 다니다가 주말에는 여행의 동반자로 손색없다. 일탈을 꿈꾸는 이라면 자전거와 텐트를 싣고 산 속으로 모험을 떠나도 좋다. 어떤 환경에서도 운전자의 기대에 부응한다.

볼보는 크로스 컨트리의 존재감을 보다 키우고자 한다. 이미 4종의 크로스 컨트리 라인업을 확충했고 필요하다면 더 늘릴 계획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중 크로스오버 라인업을 이렇게 많이 확충한 브랜드는 볼보가 유일하다.

다만 한 가지 걸림돌이 기존 대비 대폭 오른 가격이다. 5830만~6230만원이었던 XC70에 비해 크로스 컨트리는 6990만~7690만원으로 1천만원 이상 가격이 올랐다. 물론 XC70보다 몸집도 커졌고, 훨씬 고급지고 풍요롭지만 접근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7천만원짜리 차로 임도를 달릴 운전자는 많지 않다. 하위 엔진과 전륜구동 트림 추가를 통해 실속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에도 부응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크로스 컨트리의 본질은 여행가가 아닌 모험가다. 예쁘장한 겉모습에 ‘포장도로만 달리는 샌님’ 취급하면 큰 오산이다. 운전자만 준비된다면 언제든 도로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지만 어느 순간에도 우아함과 품위를 잃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모험가를 위한 차다.


이재욱 에디터 jw.lee@globalm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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