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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한토막] 왜 자동변속기는 P-R-N-D 순일까?

이재욱 입력 2017.04.21 19:0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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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위해 다양한 배열 연구.. 최근 전자식 늘었지만 안전 간과해서는 안 돼

21세기 운전자에게 자동변속기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특히 우리나라나 미국에서 자동변속기의 점유율은 절대적이다. 이미 한국은 승용 신차 중 자동변속기 비율이 99%를 넘어섰고, 미국도 95%에 육박한다. 그나마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지역에서는 여전히 수동변속기가 사랑받고 있지만 유럽 역시 자동변속기의 비중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 자동변속기가 대량 보급된 건 1990년대에 이르러서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자동변속기는 고급 옵션이었기 때문에 앞 휀더나 트렁크 리드에 ‘AUTOMATIC’이라는, 자동변속기 장착 차량임을 과시하는 레터링이 들어간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1939년 발명된 세계 최초의 상용 자동변속기, GM 하이드라매틱

그러다보니 자동변속기 자체가 20세기 후반에야 발명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동변속기의 상용화 역사는 무려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GM이 개발한 하이드라매틱 변속기가 최초의 유압식 완전 자동변속기다.

완전 자동변속기라 함은 클러치를 밟거나 변속 레버를 조작하지 않아도 상황에 따라 각 단으로 자동으로 변속되는 것을 말한다. 운전자가 해줄 일은 변속 레버를 중립(N)에서 주행(D)으로 바꿔주는 것 뿐이다. 또 후진할 때는 후진(R)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자동변속기는 각 단 대신 몇 개의 레인지(range)만으로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자동변속기 레인지는 P-R-N-D 순으로 나열돼 있다. 또 차량에 따라 D 다음에 저속 기어(L) 또는 스포츠(S) 레인지가 추가돼 있기도 하다. 모든 자동차의 설계들이 그렇듯이, 이런 자동변속기 배열에도 깊은 이유가 숨어 있다.

1950년형 카이저 픽업의 자동변속기. N-D-L-R 순서로 배열돼 있다

초창기 자동변속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50년대까지만 해도 GM 하이드라매틱 변속기나 보그워너제 자동변속기는 대부분 P-N-D-L-R 순서를 사용했다. 다른 회사의 경우 아예 P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D를 가운데 두고 주로 주차할 때 사용하는 P와 N을 윗쪽에,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L과 R을 아랫쪽에 배치하는 이 배열은 언뜻 P-R-N-D-L보다 실용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운전자들이 저단 기어(L)를 넣으려다 무심코 한 단계를 더 내려 후진 기어(R)를 넣는 실수를 범했고, 이는 곧 사고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다양한 배열을 실험했지만 전진(D)과 후진(R)이 붙어있는 상태에서는 변속 실수로 인해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 둘 사이를 떼어놓아야 했다.

그러나 D-N-R 순서로 배열할 경우 급가속 시 변속 레버가 관성으로 N이나 R로 이동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R-N-D 순서가 더 안전한 것으로 드러났고, 여기에 주차 시 자주 사용하는 R과 P를 함께 배치해 P-R-N-D의 순서가 완성됐다. D로 주행 중 언덕길이나 나쁜 노면을 만나 저단 기어 사용이 필요할 때 L로 이동할 수 있도록 L이 그 아래에 추가됐다.

비행기 조종간을 연상시키는 1969년형 쉐보레 카마로의 자동변속기 레버

6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회사마다 다른 변속기 배열로 인한 혼란을 막고 사고 위험을 줄이고자 이러한 P-R-N-D-L 배열을 법제화 했다. 미 운수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는 미 자동차 공학회(SAE)와 함께 1960년대 초부터 표준화 작업에 나서 1965년 운수부 표준 102호를 제정한다. 그리고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었던 미국에서 이러한 배열이 표준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전 세계 자동변속기가 이를 따르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국토교통부령을 통해 변속기 배열을 법제화 했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13조 3항은 중립이 전진과 후진 사이에 있을 것, 주차 위치가 후진 쪽에 있을 것 등을 규정 중이다. 단 최근에는 전자식 변속 레버 등이 늘어나면서 P를 버튼으로 작동하는 등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푸조 MCP는 P가 없고 R-N-A 순서로 동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P-R-N-D 방식의 변속 레버 외에 특이한 변속 장치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은 재규어 랜드로버와 일부 크라이슬러 차량에 탑재된 변속 다이얼을 꼽을 수 있다. 또 메르세데스-벤츠와 일부 수입 MPV의 경우 변속 레버가 스티어링 칼럼에 달린 칼럼식 시프트를 적용해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 했다.

푸조의 반자동 변속기 MCP는 수동 기반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P가 없고 R-N-A만 존재한다. 낮은 단을 사용하고 싶을 때는 수동 모드(M)로 옮겨 조작할 수 있다. BMW는 P가 버튼식인 전자식 변속 레버를 대부분의 차종에 적용했지만 고성능 M 모델들은 P가 없고 가로로 D와 R을 오가는 전자식 레버인 점이 특이하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의 전자식 변속 레버는 치명적인 사망사고를 유발해 리콜됐다

한편 최근 전자식 변속 레버의 적용 범위가 소형차까지도 넓어지는 추세가 되면서 전통적인 P-R-N-D 배열도 사라지고 있지만, 언제나 최신 기술이 이롭기만 한 건 아니다. 스타트렉으로 유명세를 탄 영화배우 안톤 옐친은 지난해 자신의 차에 치여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지프 그랜드 체로키의 전자식 변속 레버였다.

변속 레버가 P에 위치하지 않았음에도 주차가 완료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켜 안톤 옐친이 차에서 내리자 굴러내려와 그를 친 것. 이 사건으로 지프 그랜드 체로키와 크라이슬러 300C가 리콜 조치 되기도 했다. 아무리 신기술이 만들어지더라도 안전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는 오히려 위협이 될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이재욱 에디터 jw.lee@globalm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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