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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GSX-R1000 트랙 시승 (2편) : 어느 속도에서나 다루기 쉬운 핸들링

임성진 입력 2017.03.21 11: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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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고속 코너가 많은 KIC를 달리면서 섀시에 대한 느낌도 의외였다. 날카로운 일본도같은 느낌으로 어느 순간에도 단단하고 부대낄 것 같았던 느낌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R1000은 일반 도로용 슈퍼스포츠 바이크였다. 프레임, 스윙암으로 이어져 앞/뒤 서스펜션, 그리고 타이어까지 미치는 유연함덕분에 타기가 아주 쉬운 느낌이었다. 장착되어있던 200mm 넓이의 부드러운 슬릭타이어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일반 도로에서 순정 장착되는 스포츠 타이어로 다시 한 번 달려봐야 알겠지만, 분명한 것은 전반적으로 단단하고 다루기 어려운 슈퍼바이크의 고집 센 인상이 아닌, 나긋나긋하며 흡수력이 좋은 유연한 면이 듬뿍 담겨있다는 점이다.

코너가 시작되면 차체가 기우는 동작도 아주 사근사근했다. 공격적으로 앞 바퀴부터 말려 들어가는 것들과는 달랐다. 귀에다 대고 ‘슈퍼바이크는 처음이시죠? 괜찮으니까 한 번 타보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브레이킹을 강하게 해도 앞 포크가 쑥 눌리는 느낌이 명확했으며 코너를 탈출하며 스로틀을 입력해도 뒷 쇽이 부드럽게 눌려갔다. 이래서는 한계와 마주쳐도 어지간해서는 실수를 껴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즈키가 가졌던 ‘잘 못 타겠으면 내려!’하는 과거의 인상과는 반대였다. 그래도 일제 4기통 기반에서는 가장 까탈스러운 슈퍼바이크 중 하나가 R1000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롱 코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로틀을 잘못 감아도 흔들흔들하는 듯 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도록 섀시가 알아서 처리해줬다. 아마 감지를 못했을 뿐 TCS님께서 살짝 왔다 가셨을 수도 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단단한 프레임의 기본 세팅 아래서 노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수습하도록 유도하는 독일 차와 달리, 각 다소 낭창거리는 듯해도 사실은 타이어가 제대로 트랙션을 유지하도록 능수능란하게 힘을 받아주고 있어서 어느 정도 실수는 차체가 알아서 흡수하면서도 선회력을 유지해 주는 프랑스 차의 성격과도 비슷했다.

이는 아마도 GSX-R1000 노멀과 GSX-R1000R의 고급 사양으로 나뉘어지는 라인업의 분류 관계와도 일맥상통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 도로에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일반 사양의 R1000은 납차 상태로 그대로 뒷 산으로 타고 나가도 뜨겁게 탈 수 있을만큼 노면 변화에 포용력이 강한 세팅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스펜션의 세팅으로 성향을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는 부분이다. 프리로드, 압축/신장측 댐핑을 모두 직접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시스템도 그와 성격이 비슷하다. 초기 답력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타입으로, 흥분한 상태로 레버를 분간없이 당겨도 유연하게 반응한다. 처음 트랙에 진입한 뒤로 직선주로를 마치고 맞이하는 첫 헤어핀에서는 이 느낌때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적응할수록 오히려 마음대로 가지고 주무르기가 편했다. 민감한 브레이킹 파워에 신경쓸일이 적었던 것이다. 나머지 심리적인 여력을 앞/뒤 트랙션 확보에 사용할 수 있었다.

주행풍을 걸러주는 작고 아담한 차체는 반전이었다. 구형 R1000의 경우 프론트 페어링이 무척 큰 편으로 주행풍으로부터 안전했다. 보기만해도 듬직했다. 하지만 신형은 넓이가 좁고 꼬리도 무척 날렵하게 빠져있다. 와류가 생기지는 않을까 했지만 직선주로에서 200km/h이상 속도로 접어들어도 예상외로 평온했다. 공기역학이 여러부분에서 고려된 듯했다. 

가능한 부분에서 최소한으로 축소한 페어링은 무게도 가벼울뿐더러 운전자 입장에서 심리적인 부피감이 적어 좋았다. 고속 코너링에서 좌/우로 불어닥치는 강한 바닷바람에도 영향을 덜 받는 듯 했다. 수년 전부터 각 메이커들이 슈퍼바이크의 프론트 페어링을 길게 빼는 대신 납작하게 누르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체 페어링의 각 부가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는 것도 주행풍과 싸우기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짧은 시간을 타고 피트로 돌아와 레이싱 팀에 머신을 넘겨주고는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버 200마력의 예리함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면에서 부드럽고 차분했다. 2001년 GSX-R1000이 R750의 디자인으로 보어를 늘려 처음 등장했을 때의 파격적인 공포감과 전혀 달랐다. 신형은 분명 엔진은 강했지만 도로에 맞게 다듬어 언제나 부드럽고 강력한 토크가 샘솟아 나왔다. 병렬 4기통 엔진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VVT가 이 정도 위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매콤하고 무서운 GSX-R 엔진이 말 그대로 ‘성숙’하게 자랐다는 점을 실감했다. 

등장 전부터 홍보 멘트로 뒤덮었던 수많은 전자장비들은 전혀 티내지 않고 스포츠 라이딩을 돕는 수준이었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전자장비가 아니었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주체는 라이더였다. 짧은 시간동안 더 다양한 세팅의 조합으로 달려보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다른 가능성에 더 기대감에 찼다. 일반 도로에서의 퍼포먼스다. 우리가 트랙에서 경험한 R1000은 아이러니하게도 도로에서 더 잘 달릴 것 같았다. ‘강력하지만 부드럽다’는 표현이야말로 신형 GSX-R1000을 일축할 수 있는 한 마디다.

 

TEAM MSP SUZUKI 백민석 선수의 소감
- 2016 KSBK ST600 시즌 챔피언

신형 R1000을 처음 탔을 때 느낀 감정은 분명했습니다. 많은 슈퍼바이크를 타왔지만 이제껏 경험해본 엔진 중에 ‘가장 잘 만들어진 엔진’이라는 점입니다. 아이들링부터 고회전까지 넘치는 엔진의 힘은 R1000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회전을 떨어뜨려도 언제든지 풀 스로틀하면 치고 나가는 파워는 타 모델과 비교를 불허하더군요. 현재 저의 R1000은 레이스 사양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퀵시프터를 비롯해서 직접 가공한 백스텝, 그리고 미세한 세팅들로 하여금 점차 제 몸에 맞춰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여러 가지 장점들이 많지만, 역시 하나만 꼽으라면 엔진이 가장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부터 고른 출력 특성이 그렇고요, 저회전부터 꾸준히 치고나가면서 한계까지 약해지는 구간없이 풀 파워로 밀어붙이는 특성은 다른 리터클래스 슈퍼바이크에서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레이스에서는 전자장비의 방해를 받으면 안되지만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트랙션 컨트롤은 5단계 이상은 개입이 많기 때문에 일반 도로에서 탈 때 좋을 것 같습니다. 레이스트랙에서는 1~3단계 사이로 쓰는데 오늘은 1단계로 달려봤습니다. 개입 때문에 타임이 줄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이 없었고요. 오늘 노면이 굉장히 차가웠지만 페이스를 강하게 밀어 붙일 수 있었던 것은 TCS와 ABS가 보이지 않게 주행을 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모자라 아직 머신 세팅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지만 KIC에서 순정 상태로도 260~270km/h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이나모 테스트에서도 경쟁차종 대비 실제 휠 마력이 높게 나온 것을 보면 슈퍼바이크들 사이에서 확실히 경쟁력을 가진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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