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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서 '싼타페'로 부인 죽일 뻔한 해군

조회수 2017. 2. 9.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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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 이런 일이 나한테도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7년 1월 1일.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아내와 팔공산 갓바위(경북 경산시 와촌면)에 가기로 한 날이다. 우리 부부는 벌써 십여 년째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새해 첫날 갓바위를 찾아 가족의 안녕을 비는 기도를 올린다.

이날도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기분 좋게 차를 출발시켰다. 내 차는 2015년 11월에 새로 구입한 현대자동차 SUV 싼타페다. 지금까지 1만7000km정도 탔다. 59년생인 나는 23년째 현대차만 타고 있다. 아내는 아반떼, 아들은 그랜저를 타고 있어 집안에 현대차만 3대다.

2015년 형 싼타페

오후 5시경 기도를 마치고 갓바위 입구 약사암 쪽 내리막길에 주차해놓은 차에 올랐다. 앞차와 너무 바짝 붙어 있어 뒤로 살짝 후진한 뒤, 기어를 D에 놓고 천천히 출발했다. 경사가 심해 가속페달을 밟지 않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조금 떼는 것만으로도 차가 앞으로 움직였다. 브레이크를 살짝 밟은 상태에서 약 3m 정도 전진했을 때 갑자기 차에서 ‘웽~~’ 하는 굉음이 울렸다. 차는 마치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은 것처럼 앞으로 돌진해갔다. 그 때 나는 가속페달을 전혀 밟지 않았다.

순간 너무 놀라서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왼발로 풋브레이크도 밟았지만, 차는 급발진 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급발진인가?’ 머릿속에 하얘졌다.

이렇게 약 80m(나중에 대충 재보니) 정도를 달렸는데 왼쪽 길가에 주차된 SM5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이 그 차의 뒤꽁무니를 그대로 추돌했다. 반대로 핸들을 돌렸다면 20여m 계곡 아래로 떨어져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 속도로 계곡에 떨어졌다면 아내와 나는 어떻게 됐을까?

얼마나 세게 부딪혔던지 내 차에 받힌 SM5가 그대로 튕겨나가 앞에 주차됐던 카렌스를 들이받았고, 카렌스도 앞으로 밀려나가 전신주를 들이받은 뒤에야 멈춰섰다.

내 차는 SM5를 추돌한 뒤 도로 오른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대로 계곡으로 떨어지기 직전 큰 소나무를 들이받고 나서야 가까스로 멈췄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차에서 빠져 나왔다. 그 사람들은 사고가 너무 커서 순간 우리 부부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사고 직후 싼타페의 앞부분은 완전히 부서졌지만, 엔진은 돌아가고 있었다. 풋브레이크는 밟혀있는 상태였고, 7개의 에어백은 단 한 개도 터지지 않았다. 차가 너무 많이 부서져 결국엔 폐차해야할 것 같다.

SM5도 폐차할 수준으로 부서졌고(나중에 폐차), 카렌스도 너무 심하게 부셔졌다(이 차도 나중에 폐차). 나는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목과 어깨의 인대가 늘어나는 정도에 그쳤지만, 아내는 갈비뼈 여러 개와 손등이 부러지고 곳곳에 타박상을 입었다.

막상 이런 사고를 당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해군사관학교를 다닌 뒤 해군에서 3년간 군함을 몰아본 경험이 있다. 23년간 자동차 운전도 했지만, 인생을 살면서 지금까지 어떤 사고도 내본 적이 없다.

평소에 운전도 굉장히 조심해서 하는 편이다. 오죽하면 아내가 내 차를 타면 답답하다고 잔소리를 늘어 놓을 정도다. 하지만 군대에서 익힌 조심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 어쩔 수 없다.

#2 하마터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일 뻔한 나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사고로 아내는 병원에 입원하고 나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사고 충격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까?’ 궁금해졌다.

내가 사는 경북 영천과 포항의 현대차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하지만 거기서 만난 직원들은 답답한 소리만 해댔다.

“브레이크가 아니라 가속페달을 밟아 놓고 착각하는 거 아니냐. 에어백이 터지지 않은 것은 차량 센서의 충돌각이 맞지 않아서 그렇다. 에어백이 잘못 터지면 오히려 탑승자가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다행인줄 알아라).”

어떻게 그런 비상식적인 말만 늘어놓을 수 있을까. 내가 발이 3개도 아닌데 풋브레이크(왼쪽발)와 브레이크, 가속 페달 등 3개를 동시에 밟을 수 있나? 자동차 회사에 다닌다는 사람들이 세상에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지, 그 말을 듣는데 너무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여기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1월 9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사람을 거지 취급한다. 마치 내가 돈이라도 뜯으러 온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작은 전자제품도 고장이 나면 상세한 설명과 함께 고치거나 교환해준다. 하물며 자기들이 만든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가 원인 모를 사고로 부서지고 사람까지 크게 다쳤는데, 자기들과는 관계가 없으니 나가란다. 다른 직원들 보면 안 된다면서. 아마 윗사람들이 볼까봐 그러는가보다.

그 추운 겨울날 밖에 30분 넘게 세워놓고 아무도 응대해주질 않는다. 이런 대접은 태어나서 처음 받아본다. 순간 현대차 양재동 본사 옥상에서 뛰어내려 내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하게 항의를 하니까 결국 어떤 직원이 와서 기막힌 소리만 늘어놓는다.

“국과수에 의뢰를 하든지, 법대로 하든지 마음대로 해라. 집에 가서 치료나 잘 받아라.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당신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돌아가라.”

그 이상의 답변은 없었다. 춥고 몸도 아프고 더 버텨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바보처럼 그냥 영천으로 내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내가 차라도 타고 왔으면 그대로 현대차 정문에 돌진했을까?

현대차로부터 받은 EDR(Event Data Recorder)

1월 10일 현대차에 요청해서 EDR(Event Data Recorder) 자료를 받았다. 법을 찾아보니 소비자가 원하면 주게 돼 있다.

EDR 자료를 꼼꼼히 살펴봤다. 주요 내용은 ⓵계속 브레이크를 밟았으며 ⓶엔진회전수(rpm) 2700 이상 ⓷스로틀밸브 100% 열림 ⓸가속페달 변위량 99% ⓹제동페달 작동여부 ON ⓺ABS 작동여부 OFF ⓻ESC(전자식 주행 안정화 컨트롤) 미작동 ⓼최고속도 19km/h 등이다.

EDR_엔진 스로틀 밸브 열림량

하지만 어떻게 출발할 때부터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스로틀밸브가 100% 열릴 수 있으며,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는데 차가 서지 않을 수 있으며, 차가 폐차될 정도의 추돌에도 에어백이 터지지 않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특히 차 3대를 폐차할 정도로 큰 사고인데 최고속도가 19km/h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았다. 아무리 곱씹어서 읽어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EDR_엔진 회전수

사고 당시 옆에 있던 목격자 3명의 얘기를 들어보면 내 차는 출발과 동시에 ‘웽~~’ 하는 굉음과 함께 급한 내리막길에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첫 번째 차와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컸고, 튕겨져 나와 두 번째 큰 소나무에 부딪히는 순간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단다. 그들은 나중에 경찰에 가서 증인 진술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고맙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2월3일 현재) 현대차에서는 아무 말도 없고 오로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내 차는 지금 대구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있다.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해달라고 의뢰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급발진이 인정받은 사례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대차도 이를 믿고 큰 소리를 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해볼 수 있는 한 끝까지 한번 가볼 생각이다. 큰 회사를 상대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당장은 잘 모르겠다. 겁도 난다.

그래도 일단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결함신고센터에 급발진 신고부터 했다. 2월에 국회에서 박용진 국회의원이 급발진 관련 공청회를 연다고 해서 거기에 참석해 내 사례를 발표할 예정이다. 부산의 싼타페 급발진 사고자 등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모아 공동소송도 생각하고 있다. 만약 이게 어려우면 단독소송이나 국민 참여재판도 청구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현대차는 절대 타지 말라고 권하는 것이다. 집에 있는 현대차도 다 팔아버릴 생각이다. 지난 23년간 내 자신이 현대차 예찬론자였다는 게 한심하다.

끝으로 현대차 직원들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당신들도 급발진 사고를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고를 무조건 급발진이 아니라고 우기고 덮으려고만 하지 말고, 제발 원인을 좀 찾아봐라. 만약 당신들의 가족이 이렇게 죽기라도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더드라이브 = changhyen.cho@thedrive.co.kr]

(이 기사는 사고 당시와 그 이후를 당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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