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쌍용 칼리스타

조회수 2018. 4. 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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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는 구 신진지프 시절부터 민수용 지프 기반의 차를 만들어 온 대한민국 SUV의 종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굴곡이 큰 역사를 거쳐 오며 주인도 여러번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회사와 회사의 이름에 많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새로이 출시한 신차들이 줄줄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다시금 전통의 ‘SUV 전문가’로의 도약을 차근차근 일궈 나가고 있다.


그런데 쌍용자동차에게는 SUV 외에도 꽤나 다양한 차종을 섭렵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의 모체가 된 구 하동환자동차제작소 시절에는 버스로 유명했으며, 동아자동차 시절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카라반(피견인형 RV)인 ‘하우스 트레일러’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경량 스포츠카의 천국인 영국의 혈통을 물려 받은 2인승 로드스터를 내놓기도 했다. 이 차의 이름은 칼리스타(Kallista). 쌍용자동차 최초의 승용 모델이자, 대한민국 땅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2인승 경량 로드스터다.


 

영국에서 개발되어 쌍용차의 손으로 만들어진 정통파 로드스터

쌍용차가 생산한 칼리스타는 시기로만 따지면 국산 로드스터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엘란보다 4년이나 앞서 등장했다. 그러면서도 두 차종이 모두 영국 출신이라는 점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다.


쌍용차가 이 흥미로운 자동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7년, 쌍용자동차가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 팬더 웨스트윈드(Panther Westwinds, 이하 팬더)를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팬더는 영국의 백야드 빌더(Backyard Builder) 급의 소형 제작사였다. 당시 팬더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인물은 진도그룹의 김영철 사장으로, 칼리스타의 개발 과정에 관여하였으며, 후일 신형 차종 솔로(Solo)의 개발 역시 주도한 바 있다.


칼리스타는 본래 팬더가 70년대에 개발한 차종인 리마(Lima)를 토대로 했다. 팬더 리마는 정통파 영국식 로드스터로 개발된 차종이다. SS100 재규어 등의 고전 영국 스포츠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외관과 더불어 극단적인 경량화 설계사상, 그리고 철저하게 단순한 기계구조 등을 내세운 차였다. 엔진 등의 주요 부품을 GM계열인 복스홀(Vauxhall)의 것을 활용했다.


팬더 칼리스타는 이 경량화와 고전 미학이 살아 있는 팬더 리마를 아시아인의 체형에 맞춰 사양을 대폭 수정한 모델이었다. 또한 GM 계열의 주요부품을 사용해썬 리마와 달리, 칼리스타는 엔진 등 주요 부품을 포드에서 공수해 왔다. 차명인 칼리스타는 그리스어로 ‘작고 예쁘다’를 의미한다.


 

그리고 칼리스타는 그 이름 그대로 작고 예쁜 차였다. 칼리스타의 전장은 3,930mm로, 웬만한 소형차보다도 짧았다. 반면 휄베이스는 2,550mm로 극단적으로 짧은 전후 오버행을 지니고 있었다. 전폭은 1,740mm로, 세장비(細長比)가 당대 국내 완성차 중에서 극단적으로 작은 편이었다. 전고는 1,300mm에 불과했다. 짧고, 넓고, 낮은 영국식 로드스터의 전형에 가까운 프로포션을 정석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여기에 길쭉한 보닛과 그 좌우에 날개처럼 뻗은 판 형상의 전/후륜 펜더, 그리고 1920~40년대 자동차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만 같은 고전미 물씬한 소프트톱에 이르기까지 고전 영국제 스포츠카의 스타일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촘촘한 격자무늬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원형 헤드램프, 강철 파이프형 범퍼, 그리고 스포크 타입에 가까운 디자인의 알로이 휠 등에 이르는 디테일에서도 고전의 미학이 넘쳐 흘렀다.


엔진은 포드의 1.6리터 4기통 엔진과 쌍용의 2.0리터 엔진, 그리고 포드의 2.9리터 쾰른 V6 엔진의 총 3종이 준비되었다. 이 엔진들 중에서 국내 도입된 엔진은 2.0리터 엔진과 쾰른 V6 엔진이었다. 2.0리터 엔진은 119마력 의 최고출력과 17.5kg.m의 최대토크를, 쾰른 엔진은 145마력의 최고출력과 22.7kg.m의 최대토크를 냈다. 변속기는 자동4단 혹은 수동 5단 변속기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엔진의 출력은 변속기를 거쳐 오로지 뒷바퀴로만 전해졌다. 쾰른 엔진을 탑재한 버전은 불과 7.9초만에 0-100km/h 가속을 해냈다.


칼리스타의 동력성능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가속 성능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경량화에 초점을 맞춰 설계된 칼리스타의 설계 사상에 있었다. 오늘날의 로터스와도 유사한, 극단적인 경량화에서 오는 중량 대 출력비의 우위를 통한 가속 및 기동성능 향상을 우선시 한 것이다. 칼리스타는 바디-온-프레임 방식의 차체 구조를 사용했다. 차체 외장은 당시 영국계 스포츠카 제작사들에서 두루 사용하고 있었던 알루미늄 합금과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졌다. 하체는 전륜 더블 위시본, 후륜 5링크 리지드 액슬 방식의 서스펜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쌍용차는 팬더 사를 인수하기는 했지만 칼리스타의 생산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했다. 칼리스타의 생산은 전량 수제작으로 이루어져야 했으며, 자동화 공정을 도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대당 단가가 필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 국내 자동차시장의 환경 상, 스포츠카라는 세그먼트 자체가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쌍용차는 영국 팬더의 생산 설비를 이관 받아 1991년 하반기부터 평택공장에 전용의 수공 생산 라인을 마련하여 생산에 돌입했다. 팬더 인수 이래 4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1992년, 쌍용자동차의 첫 승용 모델이자, 첫 2인승 로드스터 칼리스타가 대한민국 시장에 공식 출시되었다. 출시 가격은 대당 3,170~3,670만원에 이르렀다. 당시 현대차의 중형세단 뉴쏘나타의 가격이 895~1,216만원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 기준으로 중형 세단 3~4대분에 준하는 가격이었다. 쌍용자동차는 칼리스타의 생산량을 내수 연간 100대, 수출 연간 200대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쌍용차가 당초 우려했던 대로, 칼리스타의 판매량은 목표 생산대수를 크게 밑돌았다. 이는 무엇보다도 당시의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 상황에서 수제 스포츠카는 너무나도 생소한 분야였고 고급세단의 배에 가까운 가격, 그리고 당시의 사치품 배격 풍조 또한 칼리스타의 부진 요인 중 하나였다.


 
칼리스타는 계획대로라면 본래 1995년까지 생산되어야 했다. 그러나 예상 외의 부진으로 인하여 불과 2년 만인 1994년에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생산 중단 시점까지의 총 판매대수는 고작 69대에 불과했다. 이 칼리스타들 중 해외로 수출된 물량은 37대, 내수 물량은 37대였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개체 수는 10대 내외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엘란보다도 빠르게 국내 시장에 등장한 영국 출신의 경량 2인승 로드스터인 칼리스타. 하지만 너무나도 이른 등장으로 인해 상업적으로 성공은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칼리스타가 사라진 지 20년도 넘은 지금, 칼리스타는 쌍용차가 만들어 낸 그 어떤 차 중에서도 특별했던 차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칼리스타들은 수집가들에 의해 최초 판매가격을 상회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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