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터바이크의 아이콘. 캡틴 이순수

조회수 2018. 6. 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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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바이크 20주년 특별한 인터뷰.
이름처럼 바이크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월간 모터바이크의 아이콘이며 20년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 캡틴 이순수를 오랜만에 만나보았다.

월간 모터바이크에서 캡틴 이순수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먼저 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린다.

바이크를 처음 타기 시작한 열다섯 살 때부터 “바이크란 정말 재미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재미있는 것을 나만 혼자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 바이크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면 불행한분들 일수도 있겠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것을 모르고 인생을 살다니! 라는 약간 건방진(?) 생각을 가지고, 모터사이클이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매우 멋진 취미생활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잡지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동안 계속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며 좀 더 재미있게 바이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독자 분들과 호흡을 해왔던 것이 200호까지였다. 지금은 편집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양현용 편집장이 뒤를 이어서 훌륭하게 운영하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중요한 시점에 불러주어서 고맙다. 오랜만에 독자 분들과 만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이렇게 마주앉아 인사를 드리는 지금, “이순수라는 사람의 라이더로서의 뿌리는 모터바이크에서 나왔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앞으로 독자 분들과 만날 기회를 늘려보도록 하겠다.

모터사이클이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매우 멋진 취미생활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잡지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 동안 많이 바빴다고 들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모터바이크를 떠나 새롭게 자리를 옮긴 곳이 야마하 모터사이클을 공식 수입하는 한국모터트레이딩이다. 많이 바쁘다.(웃음) 잡지 편집 일을 할 때도 바빴지만 이곳은 또 다른 의미로 바쁜 것 같다. 다만 하는 일 자체는 겉으로 보이기에는 달라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잡지를 통하여 사진과 글을 이용해 모터사이클이란 이렇게 멋진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입장이었다면, 지금도 역시 모터사이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원활하게 공급하고 알린다는 것에서 같다. 근본은 잡지를 만들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라면 잡지사 시절 시승 등으로 외부 생활이 많아 푸른 하늘 아래에서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시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계속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이전에 일했을 때에는 독자의 눈높이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판단했다면, 지금은 반대편의 입장에서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기자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판매 쪽에서도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있다는 점도. 어떻게 보면 양쪽의 입장을 두루 경험한 입장으로써 양쪽의 심정을 이제 알 것 같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서로를 위하는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자분들도 행복하고, 판매자도 행복한 세상. 그 중간 매개체로서의 모터사이클은 역시 멋진 존재다. 계속 키워가고 싶다.

이순수라는 사람의 라이더로서의 뿌리는 모터바이크에서 나왔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0권이 넘는 책을 만들어오면서 기억에 남았던 기획 기사는?

그 끔찍한 마감을 200번 이상 해왔다는 게 사실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웃음) 농담이다.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200권 이상 만들어오면서 언제나 정성을 쏟아 만들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산고를 겪은 기분이랄까. 그런 심정으로 임해왔다. 한권 한권마다 애착이 있고, 소중하다. 지금도 책을 보면 이런 저런 에피소드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전까지는 국내 시장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좁았던 시야가 변화된 계기가 된 기사가 있다.


2000년도쯤 모터사이클리스트라고 하는 일본 잡지에서 메일을 받았다. 모터사이클 비교시승회를 기획하고 있는데, 해외 라이더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초청장이었다. 사실 그 잡지는 15살 때 처음으로 바이크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된 잡지이며 나는  애독자였다. 그런 잡지사에서 독자였던 나를 대등한 기자로서 시승 초청을 했기 때문에 매우 기뻤다. 그곳에서 시승 기사를 쓰던 츠지 츠카사씨의 팬이기도 했고.

일본으로 가서 일주일 동안 20여대 이상의 바이크를 번갈아 타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장소가 아마도 이즈 스카이라인의 와인딩 코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라이딩 장면을 촬영하게 되었는데 많은 라이더들이 돌아가면서 찍다가 츠지 츠카사씨의 촬영 타임이 되었다. 이 분은 바이크를 타기 전에는 어디에서나 흔히 있을 법한 동네 아저씨의 인상이다. 심지어 라이딩 기어도 지극히 평범한 것을 입었는데, 여러 번 왕복 촬영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페이스가 올라간 상태였다.

코너 후반에서 뒷바퀴가 미끄러지면서 바깥으로 돌아나가고 블랙 마크가 생겼다. 레이스 머신도 아닌 것을 타고 평범해 보이는 일본 아저씨가 눈앞에서 달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충격이었다.  모터사이클은 저렇게 타는 거구나 라는 것을 느꼈달까. 블랙 마크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바이크를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타이어의 마찰력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고, 한계를 잘 알고 있고 컨트롤 할 수 있기에 나올 수 있는 기술이다.

세상에는 정말 잘 타는 사람들도 많고 멋지게 바이크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몇 년 뒤 모토GP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카메라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을 때 눈앞에서 선수들이 화려한 기술로 달려도 그때만큼의 감동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처음으로 외국의 프로 라이더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상에는 정말 잘 타는 사람들도 많고 멋지게 바이크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 얼마나 좁은 곳에서 있었는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그 때의 영향이 그 후 모터바이크의 편집 방향이나 시각에 많이 반영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건 에피소드라기보다는 내가 은근히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랄까 그런 게 있다. 지금은 ‘바이크’ 라는 명칭을 다들 사용하고 있다. 처음 잡지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97년도에만 해도 ‘오토바이’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지금과는 달리 레저용의 수입 바이크가 매우 적었고 지금보다 많이 낙후된 상황이었다.

‘오토바이’ 라고 하는 단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잡지사를 다니면서 용어를 한 번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이크’라는 용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지금은 바이크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뿌듯하다. 앞으로도 부정적인 이미지의 ‘오토바이’ 라는 용어보다는 이 용어를 좀 더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모터바이크에서 정착시킨 또 다른 용어가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할 때 맞는 표현법이나 단어가 없어서 매우 난감했던 경험이 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표현이나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문화의 깊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이 없다는 것이고, 해당 현상이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을 하고 현상에 대해 이름을 붙임으로서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모터사이클을 예로 들었을 때 바이크가 직진을 하다가 기울어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가 당시에는 없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바이크는 똑바로 가거나 기울어갈 뿐이지 뱅크각이 변하는 과정에 대해 생각을 하거나 그런 부분을 표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해당 내용을 어떻게 표현할지 찾아보다가, 일본 네모토 켄 씨의 책에서 사용한 용어인 ‘과도 특성(스쳐지나가는, 변화하는 특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어떤 뜻인지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그때까지 국내 라이더들이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현상에 대한 용어들을 많이 수입해왔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처음에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많이 어색한 단어였는데, 계속 사용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정착되는 것이 보였다. 바이크 라이더들도 라이딩을 하면서 단순하게 빠르다, 재미있다보다는 왜 그런지 어째서 그런지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는, 물론 그렇게 하려면 나누어진 부분마다 명칭이 있어야겠지만. 그런 바탕을 어느 정도 만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자부하고 있다.

기억나는 실수가 있다면?

잡지는 글 쓰는 일 뿐 아니라 사진, 편집 등 다양하게 분업화된 결과물이다. 나의 일은 그중에서도 모터사이클을 시승하여 글로 표현하는 일이니까 아무래도 실수라면 시승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사고를 내거나 다쳤던 일이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다치게 되면 일을 못하게 되고 그 부분이 가장 큰 실패다. 내가 맡은바 일을 못하게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니까. 그 외의 일들은 웃고 넘어갈 수 있다.

생각해보면 가장 어려웠던 일이 마감 기한을 지키는 일이었던 것 같다. 늘 아쉬웠다. 사진도, 글의 퀄리티도 그렇고 솔직히 시간과 공을 들일수록 완성도는 올라간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마감에 쫒기다 보니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하는데 항상 시간만 조금 더 있었더라면, 이해하기 쉬운 표현, 괜찮은 표현들을 찾아 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상태로 책에 실리는 것이 실패의 연속이라고 할까.(웃음)

내가 굴린 펜대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섣불리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얼렁뚱땅 써서는 안 되겠다는 책임감이 든다.

그래도 모터바이크 기사를 읽고 바이크를 샀다거나 바이크를 구매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보람을 느낀다. 업계 사람들을 만났을 때 모터바이크 속 내 기사를 읽고 바이크를 시작하게 되어 이렇게 업계까지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보람이 50%, 내가 굴린 펜대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셈이니. 섣불리 헛소리를 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얼렁뚱땅 써서는 안 되겠다는 책임감 이 50%를 차지한다.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거워진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앞으로도 독자 분들과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많이 바쁘다보니 아무래도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앞으로는 틈틈이 안부도 전하고 소식도 전하며 소통했으면 좋겠다. 잘 부탁드린다.

글/사진 양현용

제공 월간 모터바이크 www.mb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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