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쉐보레 이쿼녹스, "스테디셀러의 가능성 엿보다"

조회수 2018. 6. 19. 17: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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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8일, 2018 부산국제모터쇼의 쉐보레 전시관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기자들은 미국에서 건너 온 이쿼녹스(Equinox)를 향해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첫인상에 대해 수군거리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철수설로 몸살을 앓았던 터라 평가에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귀 기울여보니, “글쎄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디자인과 가격을 마주한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쉐보레는 언제나 그렇듯 ‘타보면 안다’를 강조하는 브랜드. 뜨뜻미지근한 분위기를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모터쇼가 끝나자마자 시승 행사를 열고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6월 18일, 이쿼녹스와 함께 서울 강서구에 자리한 ‘메이필드 호텔’에서 파주 ‘카페소솜’까지 왕복 100㎞를 달렸다.

에퀴녹스? 이쿼녹스? 생소했던 첫 만남

이쿼녹스는 온라인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위기의 한국지엠에게 단비를 내려줄 수 있을지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도 화두 중 하나. 에퀴녹스? 이쿼녹스? 한국어 표기와 발음을 정하는 단계부터 쉽지 않았다. 한국지엠은 지난 4월 차명을 이쿼녹스로 확정 발표해 논란을 잠재웠다.

참고로 이쿼녹스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기를 의미한다. 사계절을 다시 스물네 개 절기로 나누는 우리나라에선 ‘춘분’ 또는 ‘추분’과 일맥상통한다. 쉐보레에 따르면 ‘탄탄한 주행성능과 탁월한 실용성, 높은 효율 사이에서 찾은 균형’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국내 소비자에게 이쿼녹스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지만, 미국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2004년 데뷔해 2017년 3세대에 이르기까지 242만4,151대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 셀러다. 지난해 이쿼녹스는 29만458대 판매고를 올리며 미국 콤팩트 SUV 시장에서 토요타 RAV4와 닛산 로그, 혼다 CR-V, 포드 이스케이프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여긴 한국. 이쿼녹스의 크기도 혼란의 대상이었다. 이쿼녹스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4,650×1,845×1,690㎜, 객실 공간을 가늠하는 지표인 휠베이스는 2,725㎜다. 국내 시장에서 중형 SUV 세그먼트인 현대 싼타페와 준중형 SUV 투싼의 사이를 정확히 가르는 크기다. 미국에선 콤팩트 SUV에 속해 투싼과 힘을 겨루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으로 넘어 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싼타페와 같은 경쟁선 상에 올랐다. 가격 때문이다.

이쿼녹스의 가격은 가장 낮은 트림인 LS가 2,987만 원, LT는 3,451만 원, 프리미어가 3,892만 원이다. 여기에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을 더하면 4,092만 원까지 치솟는다. 투싼 1.7 디젤 가장 높은 트림(2,865만 원)에 견줘도 맞수로 여기긴 무리가 있다. 결국 이쿼녹스의 스파링 상대는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 차체 크기와 배기량을 곧 자동차 등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큰 국내 소비자 중 일부가 이쿼녹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유다.

희망의 빛은 크루즈보다 밝다

상황이 어떻든 이쿼녹스는 최근 소비자에게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SUV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세가 예전 같지 않은 준중형 세단 시장에 발을 들인 크루즈와 가장 큰 차이다. 이쿼녹스는 국내 SUV 가운데서도 가장 판매량이 많은 중형. 희망의 빛은 크루즈보다 밝다.

2017년 국내 5개 자동차 제조사의 내수 판매량은 155만80대였다. 싼타페와 쏘렌토, 캡티바, QM6 등 국산 중형 SUV 판매량의 합은 16만18대였다. 점유율은 10.3%. 국내 자동차 시장의 대표 세그먼트인 중형 세단 점유율(12.5%)을 턱 밑까지 쫓아왔다.

올해 중형 SUV의 인기는 훨씬 더 높다. 중형 세단 점유율을 제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2018년 1~5월 국내 5개 제조사의 내수 판매량은 62만5,176대. 중형 SUV와 세단의 판매량은 각각 8만3,418대, 6만2,447대였다. 점유율은 13.3과 10%. 이쿼녹스는 옛말대로 ‘누울 자리 봐가며 누운 셈’이다.

GAME START

게임은 시작됐다. 이쿼녹스는 국내 소비자의 혼란을 잠재우고 중형 SUV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쿼녹스를 타본 후 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크루즈처럼 단명하진 않겠네.”

외모는 평범하다. 자동차의 패밀리룩은 장점과 단점 모두를 가지고 있다. 잘 정돈된 패밀리룩은 브랜드 정체성을 뚜렷이 내비춘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모습에 신선한 느낌이 덜하다. 이쿼녹스가 대표적이다. 쉐보레 가문의 상징인 ‘듀얼 포트 그릴’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이쿼녹스의 디자인은 단정하다. 멀끔한 ‘남친룩’을 대변하고 있달까.

곳곳에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도 여럿 자리하고 있다. 특히 비스듬히 누운 두툼한 C필러는 이쿼녹스의 자랑이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와 포드 익스플로러 등 비슷한 모양의 C필러를 가진 SUV처럼 강인한 인상을 준다.

반면 뒷모습은 다소 아쉽다. 크루즈와 말리부 등 여느 쉐보레 자동차에서 익히 봐왔던 테일램프 디자인에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역삼각형 센터페시아를 중앙에 두고 좌우 대칭을 이루는 인테리어도 눈에 익긴 마찬가지. 꼭 들어맞지 않는 패널 사이 단차도 감점 요소였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C필러를 쳐다보길 반복했다. “그래, 이건 참 멋있단 말이지…”

‘세이프티 퍼스트’, 아주 칭찬해

자동차의 안전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이 있을까. 차체에 쓴 초고장력 강판 비율, 해외 유수의 기관으로부터 받은 안전평가 점수, 에어백 개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등 여러 항목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전으로 장사하지 않는 제조사의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에어백이 몇 개고, 어떤 최신 안전 장비를 넣었다고 한들 추가 비용을 내야하는 옵션이면 ‘말짱 도루묵’인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이쿼녹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쉐보레는 긴급 상황 시 제동을 돕는 ‘시티 브레이킹’과 ‘차선이탈 유지 및 경고’, ‘후측방 사각지대 경고’ 시스템 등을 모든 트림 기본 사양으로 넣었다.

사고 위험 발생 시 시트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신호를 주는 ‘햅틱 시트’도 모든 트림에서 기본이다. 때문에 이쿼녹스의 가격표를 보면 안전에 관한 장비는 추가 사양에 없다. 쉐보레가 꼽은 이쿼녹스의 타깃은 아이를 둔 혹은 이제 갓 결혼 생활을 시작한 30~40대 부부. 진정한 패밀리카로 거듭나기 위해 쉐보레가 잡은 주제는 ‘세이프티 퍼스트’였다.

균형이라는 의미 담은 이쿼녹스, “이름 값 해”

이쿼녹스는 운전이 참 편했다. 시트와 각종 거울을 몸에 딱 맞추고, 실내 온도까지 익숙한 환경으로 만들어도 처음 운전하는 차는 어색하기 마련이다. 가속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뿜어 나오는 힘이 다르고, 미션의 변속 시점도 익숙하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이쿼녹스는 처음부터 편했다. 가속과 조향, 제동 등 기존 습관대로 운전해도 생각한대로 움직였다. 서투른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아도 불안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균형의 의미를 담은 이쿼녹스의 이름이 다시금 떠올랐다. 균형에서 배어 나온 뛰어난 기본기가 바로 이 맛 아닐까.

물론 빠르진 않다. 이쿼녹스의 엔진은 직렬 4기통 1.6L 디젤.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32.6㎏·m를 낸다. 시속 100㎞를 넘나드는 고속도로에서 추월하기 위한 가속력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6단 자동변속기와 짝을 이뤄 가속을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뛰어난 고속 안정성 덕분에 계기판 숫자를 보고 놀라는 나를 여러 번 마주했다.

개인적으로 무게 중심이 높은 SUV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단보다 쉽게 휘청거리는 움직임이 싫어서다. 하지만 1년 남짓 자동차 기자 생활을 하며 세단과 해치백, 쿠페보다 SUV 시승이 단연 많았다. 높은 인기를 증명하듯 우후죽순 신차가 쏟아져 나온 까닭이다. 10여 종에 이르는 SUV를 시승하며 주행 성능 특히 승차감에 만족을 느낀 차는 그리 많지 않다.

세단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면 대부분 ‘기준 미달’이었다. 반면 이쿼녹스의 주행 성능은 ‘기대 이상’이다. 단단함과 안락함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찾았다. 만약 둘을 50:50으로 나눈다면 이쿼녹스는 단단함에 무게를 2 정도 더 실었다. 덕분에 노면을 꽉 붙들고 달리는 맛이 좋다. 하지만 더 높은 속도에서 안정감을 확인하고 싶어 가속 페달을 짓누르며 채찍질해도 이쿼녹스는 요지부동. 일상 주행에선 충분한 힘이지만, 욕심을 부리면 성에 차지 않는다.

출력을 포기하면 이쿼녹스는 높은 효율을 선물한다. 시승한 이쿼녹스 AWD의 공인연비는 12.9㎞/L(고속 14.4㎞/L, 도심 11.9㎞/L). 에어컨 온도를 22℃로 설정하고, 성인 남성 3명이 올라타 시승을 마쳤을 때 트립 모니터는 17.9㎞/L를 가리켰다. 참고로 내 발이 되어주는 소위 ‘엑디수(엑센트 디젤 수동변속기)’는 여름이 되고 18.9㎞/L를 가리키고 있다. 심지어 혼자타고 다니는데…

쉐보레를 높이 샀던 소비자들이 괜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쿼녹스는 다시 한 번 쉐보레의 뛰어난 기본기를 증명했다. 평범하지만 단정하고 질리지 않는 디자인과 빼어난 안전 사양, 빠르진 않지만 만족스러운 주행 성능 등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글 이현성 기자

사진 쉐보레,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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