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한 자'의 결과물 - 푸조 5008 알뤼르 시승기

조회수 2018. 1. 24. 12: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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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눈부신 발전을 보이는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는 푸조다. 국내에서는 한때 지나치게 전위적인 디자인과 조악한 품질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이 유럽의 맹주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절치부심한 듯 내 외관 디자인을 판이하게 바꾸고 만듦새 수준을 끌어올리더니, 이제는 유럽 GM 최후의 보루였던 오펠까지 흡수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이 발전을 명확히 설명하는 부분은 단연 ‘SUV’ 라인업이다. 푸조의 공식 수입원인 한불모터스 측에서도 제법 탄탄히 라인업을 구성한 푸조 SUV들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풀어나가고 있을 정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해치백과 MPV를 주력으로 빚었던 브랜드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2세대 5008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일단 선대 모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업종 변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크나큰 천지개벽을 이뤘기 때문. 실용성 넘치는 MPV였지만 당최 방향성을 알 수 없는 애매한 스타일링은 크나큰 약점으로 작용했다.
 
 
시간이 흐르며 PSA가 자사의 크로스오버 모델들을 SUV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하자 5008도 완연한 SUV의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5008은 남성적 형상과 세련미가 공존하는 3008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꽁무니를 조금 더 길게 빼내어 적재 공간과 더불어 승차 공간까지 넓힌 베리에이션 모델이다. 가까운 예로 보면 현대차 싼타페 – 맥스크루즈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겠다.
 
 
그렇기에 3008의 디자인 테마와 일맥상통하다. 여기저기 날이 서 있는 외관은 여전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어정쩡했던 펠린 룩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심벌인 사자를 연상케하는 강렬한 얼굴이 압권이다. 또한 C-D 필러 파트가 크게 확장되어 어쩐지 ‘키 큰 미니밴’ 같기도 하지만 개성 넘치는 테일램프 디자인과 심플한 테일게이트 및 범퍼 구성으로 브랜드 고유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말한다.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브랜드 특유의 감성과 세련미까지 몽땅 담은 실내는 가히 눈부시다. 플로팅 타입의 모니터를 통해 시인성을 향상시킨 것도 좋고, 각종 컨트롤러는 촉감도 상당히 고급스럽다. 직물과 알루미늄, 가죽 등을 혼재한 인테리어 소재는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세련된 배치로 되려 고급한 느낌을 전한다.
 
다만 지나치게 조작 인터페이스를 단순화시키다 보니 실제 사용 시의 편의성이 떨어진다. 일례로 공조장치를 조작하기 위해선 일단 센터페시아의 공조장치 버튼을 누르고 센터페시아 모니터에서 터치로 온도나풍량을 조절해야 한다. 모니터에서만 공조장치 조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직관적 조작 측면에서 높은점수를 주긴 어렵다.
 
아울러 시승차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내비게이션 버튼을 누르면 3008처럼 ‘해당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라는 팝업 메시지를 띄우지 않는다. 그냥 화면이 검게 처리되어 운전자를 당혹게 한다.
 
그럼에도 덩치에 비해 자그마한 2스포크 타입 스티어링 휠과 헤드업 클러스터, 플로팅 모니터 조합으로 자아내는 ‘아이-콕핏(i-Cockpit)’ 컨셉트는 훌륭한 심미적 요소로 작용할 뿐 아니라, 실제 주행 시에도 빛을 발한다. 불필요한 시선 이동을 최소화하여 운전을 편하게 만들기 때문.
 
아울러 승차는 엔트리 모델인 4,290만 원짜리 ‘알뤼르’ 트림이었는데도 기본 덕목이라 여겨지는 편의장비들은 제법 풍부하게 담았다. 열선 시트는 3단계 조절을 지원하고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와 그립 컨트롤, 풀 그래픽 클러스터까지 품었다. 
 
여기에 차선유지 지원 시스템, 오토 하이빔, 액티브 세이프티 브레이크 등으로 대표되는 ADAS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도 기본 사양으로 풍부하게 담아낸 것도 특징. 대신 마사지 기능을 더하고 알칸타라를 둘러 고급감을 강조한 고급형 시트나 전방 카메라, 어드밴스드 크루즈 컨트롤 같은 ‘더’ 고급스러운 장비는 상위급 모델에 맡겼다.
 
5008은 3008에 비해 190mm 길고 휠베이스도 165mm 길다. 따라서 늘어난 꽁무니가 한층 광활해진 적재 공간을 만들어낸다. 2열 시트는 1:1:1 비율로 접히는 다양성을 지니고, 2열 / 3열 시트를 모두 접으면 적재공간은 2,150리터까지 늘어난다. 여기에 트렁크 높이는 낮고 차체는 제법 높아 물건을 싣기도 편하다. 심지어 엔트리 트림인데도 전동식 테일게이트도 기본으로 제공한다.
 
3열 시트는 트렁크 플로어에 완전히 수납이 가능하며, 심지어 탈거도 가능하다. 5인승으로 사용하기 위해 3열 시트를 수납하거나 탈거하면 트렁크 용량은 952리터로, 한 체급 정도 큰 기아 쏘렌토보다도 광활한 적재 공간을 자랑한다.
 
그러나 대가족을 태우기 위해 3열 시트가 필요해서 5008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은 조금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겠다. 백 번 양보하고 2열 시트를 앞으로 쭉 잡아당겨도 3열 시트에는 성인이 탑승하기 상당히 어렵다. 3열 시트도 슬라이딩이 가능하다면 가까스로 탑승할 수 있겠지만 심지어 어린아이들이 타기에도사실 불편한 구석이 있다.
 
반면 2열 공간은 넉넉한 편. 머리 공간에도 여유가 있고 3열 시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슬라이딩 기능으로 2열 시트를 뒤로 쭉 밀고 착석하면 무릎 공간도 여유가 넘친다. 등받이 각도도 조절이 가능하여 자세를 편하게 잡을 수 있는 데다 개인 선반까지 제공하는 섬세함까지 갖췄다.
 
3008보다 훌쩍 커진 차체에는 다름 아닌 1.6리터 HDi 엔진이 들어간다. 터보차저를 하나 더 집어넣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최고출력 120마력과 최대토크 30.6kgm를 내뿜는 유닛. 그러나 3008과 비교해도 50kg밖에 늘지 않은 체중 덕에 일상 주행에서 답답하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인다.
 
가령 중저속 구간에선 앞바퀴에 두툼한 토크를 쏟아내어 가볍게 차체를 내몬다. 거창하게 별도로 빼놓은 'Sport' 버튼을 눌러 엔진 회전수를 조금 더 높게 쓰면 시내 구간에선 불만을 크게 토로하진 않을 정도. 그러나 고속도로에선 최고출력 수치의 갈증을 느낀다. 물론 디젤 엔진 특유의 토크감이 재 가속시에도 발휘가 되긴 하나 속도계 바늘을 빠르게 올리진 못한다.
 
푸조는 아이신제 6단 변속기를 안락함에 초점을 맞추고 매만졌다. 재빠른 변속 속도보다는 부드러운 변속 감각에 힘썼다. 다만 항속 기어 한두 개 정도는 더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변속기 효율을 오롯이 HDi 엔진에게 떠맡기는 느낌이 들기 때문.
 
5008은 3008보다 꽁무니가 제법 긴데도 굽이진 길을 돌아나갈 때 이 급의 SUV로선 충분히 훌륭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스티어링 휠이 작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했지만 특별히 불편한 문제는 없었다. 되려다루기 쉬우면서 작은 운전대로 자아내는 감각이 제법 날렵하기까지 했다. C세그먼트 해치백부터 중형 SUV까지 두루 쓰이는 EMP2 플랫폼은 확실히 ‘명품’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차체 크기 증대 폭에 비해 공차중량 기준 무게 격차는 크지 않다. 한 뼘은 커졌는데도 고작 50kg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몸무게 덕에 복합 연비도 리터당 12.7km로, 3008과 불과 0.4km의 차이를 보인다. 실제 주행에서도 복합연비 정도의 수치를 뽑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4,290만 원의 가격표는 하위 모델인 3008의 엔트리 트림과 400만 원의 차이를 보인다. 훌쩍 커진 차체와 적재공간을 감안하면 충분히 감안할 만한 가격 폭이다. 아니, 되려 3008이 비싸게 느껴지는 기현상을 보인다. 엔트리 트림임에도 불구하고 열선 스티어링 휠이나 통풍시트를 정도를 제외한 편의장비의 갈증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푸조의 장기 중 하나인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나 스마트폰 무선 충전, 핸즈프리 스마트 테일 게이트가 눈에아른거리면 여기에 360만 원을 더해 'GT Line' 모델을 구입하면 되고, 1.6리터 디젤 엔진 파워가 두고두고 아쉽다면 화끈하게 1,100만 원을 더 얹어주고 GT 모델을 고르면 된다. 반면 시내 주행 위주의 운전자라면 알뤼르 모델을 선택하고 1,100만을 저축하는 게 현명하다.
 
혁신적으로 변모한 내 외관 디자인은 매력적이기 그지없고, 수입차 시장에서 날고 기는 동급 모델들과 비교해도 결코 상품성 측면에서 위축되지 않는 것이 5008이다. 그 가치가 소비자들에게 절절히 전달된 건진 몰라도, 지난 12월에는 월간 판매량 100대를 넘기며 순항 중에 있다.

5008의 선대 모델 포지셔닝은 MPV, 즉 다목적 차량으로 다재다능한 자동차였다. 그러나 특출난 부분이 없어 사실상 ‘애매’했다. 그러나 완전한 체질 개선을 이뤄 새로 거듭난 5008은 SUV 중심으로 흘러가는 시장의 맥을 정확히 집었다. 
 
또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어딘가 허술한 만듦새를 ‘전위적’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려던 과거를 말끔히 지웠다는 데에 있다. SUV 열풍에도 고집으로 일관했던 푸조가 가닥을 잡고 트렌드에 편승하더니, 금세 그들은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언제봐도 '작정한 푸조'의 모습은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끝끝내 다카르 랠리를 3연패로 마무리 지은 모습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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